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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인간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와 역사가, 그 역사가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이 서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한 유시민의 역사 르포르타주 『역사의 역사』. 경제학도, 정치가, 지식소매상에서 최근에는 방송인으로도 종횡무진 활동하는 작가 유시민이 오랜 독서와 글쓰기의 원점인 역사 속으로 돌아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과 이어진 촛불혁명을 마주하면서 역사의 현장이 어떻게 기록되고 전해지는지 다시금 관심을 기울인 저자는 2016년 겨울,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질문의 자리로 돌아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저자가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이자 평생에 걸쳐 찾는 지적 과제다. 이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무엇보다 역사의 발생사 즉, 역사의 역사를 깊게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저자는 역사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거나 최근 관심을 끈 대표적인 역사서들을 찾아 틈틈이 읽고 정리했다. 역사의 서술 대상이나 서술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위대한 역사서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금 우리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고, 저자는 그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역사에 가장 정직하게 접근하는 방식이라 여겼다. 이 책에는 이처럼 저자가 탐사한 동서양의 역사가 16인과 그들이 쓴 역사서 18권이 담겨있다. 사마천의 《사기》, 이슬람 문명의 발생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한 길잡이가 되어준 《역사서설》 등의 역사서를 고대부터 현재까지 시대 순으로 9장으로 나뉘어 구성했고, 각 장에서 때로는 한 명의 역사가와 한 권의 책을, 때로는 복수의 역사가와 여러 권을 함께 살펴본다. 르포라는 특성상 역사서들의 원문을 적지 않게 소개하고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지면의 한계와 번역의 아쉬움을 덜기 위해 저자가 직접 발췌 요약과 번역까지 도맡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마디로 역사를 정의한다거나 자신의 의견을 높이는 대신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아래 스민 메시지와 감정에 공감하는 데 집중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해석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는지 살펴보며, 위대한 역사가들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생각과 감정을 듣고 느껴봄으로써 역사가 무엇인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저마다 역사를 읽고 살아가는 태도를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저자
유시민
출판
돌베개
출판일
2018.06.25

 

1. 서두

우리가 역사를 알고자 하고 역사를 기술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개인과 국가의 정체성을 찾고자함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국가나 주변의 국가들이 역사 왜곡을 하려고 할 때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기준을 정하는 것인데,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그 기준을 흔들거나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바르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그렇게 기술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과연 역사를 바르고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한 일일까. 또한 그렇게 기술된 역사를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러기를 믿고 싶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역사는 기술되는 시대의 요구와 기술하는 사람의 가치관, 그리고 그 역사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시대와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수집한 자료들도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서 전한 것들이기에 완전한 사실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사를 기술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여러 불완전한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기술해야 하며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역사라는 과거의 이야기에 대한 공부 이전에 ‘역사’가 무엇인지 그 근본을 향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즉, 역사의 발생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역사’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쓴 책이 바로 『역사의 역사』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가 기술되고 향유되는 과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엿볼 수 있다.

 

 

2.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와 방법

한 개인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 속의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함도 아니고 현재의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함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알기 위함이다. 역사를 통해서 한 개인은 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과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역사의 내용도 바로 이에 관한 것이다. 즉, 역사는 우리 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어떤 변동성과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라는 변치 않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덧없이 사라지는 많은 변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우리가 익숙한 우리나라의 역사와 달리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는 사실을 쓴 이야기이고 언어로 재현한 과거이기 때문에 남의 언어로 재현한 남의 과거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그 책이 담고 있는 기초 정보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러한 기초 정보를 다 알려고 하면 끝도 없고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서사에 집중해서 읽으면 그래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고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어떤 역사서가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그 역사서를 기술한 사람의 인생을 더 잘 이해하면 분명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작은 일단 서사에 집중하면서 읽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는 내용을 발견하면 그 이면으로 좀 더 집중해서 들어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3. 역사는 오류 속에서 재탄생한다.

저자는 역사가가 사료를 통해 수집한 사실을 전부 기술하지 않으며, 아는 사실을 다 기술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중심으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가는 저마다 다른 기준에 따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을 선택하며, 같은 사실로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역사를 쓰는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이 역사 서술의 다양한 요인을 좌우하게 된다. 이처럼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는 지점에서 역사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라고 지적한다. 즉,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했다고 해도 그 사실 자체가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전승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오류가 발생할 여지도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역사의 기술이 오류 속에서 재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로 역사는 기술하지 않는 것보다 기술하는 것이 낫고, 이미 기술된 역사를 재검증하면서 더 나은 역사 기술법을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역사 기술 오류의 대표 주자로 꼽은 인물은 ‘랑케’이다. 그런데 랑케는 아이러니하게도 '있는 그대로의 역사'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즉, 랑케의 필법은 사실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기술 방법이다. 그래서 랑케는 단순히 사실의 나열과 정리에 집중했고, 그가 사실이라고 수집한 자료들이 대부분 승자의 기록과 같이 편향된 조건에 의해 보존된 자료였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랑케가 이렇게 역사 기술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집요하게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노력 덕분에 그 속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새로운 서구 역사학이 꽃을 피우게 된다. 그 결과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이 탄생했다. 결국 역사라는 것은 애초에 불완전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현대의 역사가의 주관과 시대적 요구를 통해 재탄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역사는 죽은 과거를 기술하는 것이지만 현재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미래를 향하여 변화한다는 생각이 든다.

 

 

4. 각자의 필요에 의한 역사

저자는 역사란 필요에 의해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며 재탄생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 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 잡은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역사 기술도 시대에 따라 그 관점을 달리해 왔다. 예를 들어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당나라를 물리친 안시성의 위치를 지금의 평안남도 안주 근처라고 서술하였지만, 민족주의자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에서 안시성이 압록강 너머 만리장성 바깥의 랴오허강 근처에 있었다고 서술했다. 그래서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을 가지지 못하면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존재가 되고, 역사가를 만나지 못하면 사실은 생명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란 카의 말처럼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또한 그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롭게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5. 맺음말

저자는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는 말을 했다. 이는 토인비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역사가의 일이고, 역사는 기록이고 과학이며 예술어이여 한다고 말한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의미로 역사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전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그래서 좋은 역사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새로운 독자와 공명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인류가 태초부터 해 왔던 변하지 않는 하나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는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까. 그에 대한 해답은 저자가 최종적으로 언급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미래에는 인간에 대한 정의가 불문명해질 것이다. 더구나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우주의 중심은 결코 인간이 아님이 명확해졌다. 지구의 관점에서만 봐도 인류의 멸종은 다른 종의 멸종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역사 속에 인간을 넘어서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할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보고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만이 아닌 우주 전체를 봐야 한다. 그렇게 좀 더 확장된 관점 속에서 상호 소통을 할 때 역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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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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