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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역사ㆍ정치ㆍ경제ㆍ글쓰기ㆍ여행 등 인문학 분야의 글을 써온 작가 유시민이 과학을 소재로 쓴 첫 책이다. 유시민에게 “지적 자극과 정서적 감동을 준 과학이론,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교정해준 정보를 골라 새롭게 해석”했다.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ㆍ통섭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과학 책을 읽으며 인문학 공부로 배우지 못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과학의 토대 위에서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온전한 공부를 하기 위해 인문학과 함께 과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회한의 감정을 실어 말한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인문학과 함께 과학도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 인문학이 맞닥뜨린 위기와 한계를 뚫고 나아가려면 과학의 성취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문학은 과학으로 정확해지고, 과학은 인문학으로 깊어진다.
저자
유시민
출판
돌베개
출판일
2023.06.23

 

1. 들어가는 말

과거에는 철학이라는 의미의 카테고리 안에 세상을 이해하는 모든 학문의 개념이 다 들어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통합된 지식과 지혜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철학’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발전하면서 지식과 지혜는 ‘철학’이라는 단일 명칭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문화, 종교 등으로 세분화되었고 또 그 각 분야 안에서도 더 세분화되었으며, 우리가 익히 통합적으로 알던 철학은 그 세분화된 지식과 지혜의 일부 카테고리로 격하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세분화된 분야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소통해 가는 추세에 있다. 굳이 새롭게 ‘통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필요에 의해 다시금 지식과 지혜의 통합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문과와 이과의 구분, 또는 철학과 과학의 구분 등은 향후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될 것이고, 각각의 분야 속에 다른 분야의 지식과 지혜를 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라는 이 책도 그러한 추세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떤 새로움을 이야기하기보다 인류의 지식이 통합되어있던 시기를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런 만큼 이 책의 세부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애초에 과학의 특정 전문 분야를 자세히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분리되어 있던 다른 분과의 전문가가 상대적 위치에 있는 또 다른 분과의 학문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러한 접근법의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2.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보통의 사람들은 익히 느낌으로 아는 것에 대해 굳이 어떤 수치적 해석과 증명을 세심하게 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면 대충 그러려니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느낌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세부적으로 들어간 또 다른 학문의 세계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만큼 어떤 면에서는 애초에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저자 또한 자신이 ‘거만한 바보’ 였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굳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확실히 옳다고 아는 것에서조차 그 옳음의 증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명상의 과학적 효과가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인류는 이미 오랜 시간 명상을 해 왔고 그 효과를 느껴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과학적 증명이 되지 않은 것은 하나의 미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과학이 증명해 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인정이 되고 사람들도 명확하게 이해를 한다. 이 지점에서 굳이 익히 알고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과학으로 재점검하고 그 가치를 증명받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심지어 과학 마저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데, 왜 과학이 세상의 다른 지식과 지혜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남는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단지 좀더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아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것도 발견하게 된다. 즉, 영역의 확장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 숨을 쉬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파고들면서 공기에 속한 원자의 구성이나 그 원자들이 우리 몸과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알 수 있고, 또 거기에서 새로운 의문점을 발견하면서 다른 질문을 던지고, 그 다른 질문에 대답하면서 또 계속 확장되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익히 느낌으로 아는 것도 사실은 아는 게 아닐 수 있는 것이고, 그 안에는 또 다른 무한한 무지의 세계, 우리가 발견해 가야하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무언가를 새롭게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모르는지도 알려주는 것이 된다.

 

저자는 인문학이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라고 말한다. 이는 인문학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만심의 결과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 과학이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설명의 명확성 때문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문학 스스로 더 이상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인문학은 과학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문들을 던질 수 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과학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해 내는 속에서 다시금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3. 과학과 인문학의 상호작용

저자는 과학이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닌 마음의 상태이고, 세상을 바라보고 본질을 드러내지 않은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마주하는 방법은 인문학과는 다르다. 과학이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이전에 관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대립하거나 서로 무시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적 관계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과학적 근거와 함께 우리가 어디에 어떻게 실존하고 있는지 알려주었고, 다윈의 진화론은 우리의 조상이 누구이고 지구상의 생명체가 모두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 진실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또 다른 사상적 발전의 토대가 된다.

 

또한 공산주의라는 사상이 현실에서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과학적 증명으로 설명이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잘못 파악한 것부터 문제의 시작이 됐는데, 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 자신의 것을 소유하고자 함이고 그 소유를 통해 유전자의 영속성을 유지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무관하게 장기 존속하기 어려운 사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모호하고 비현실적일 수 있는 사상도 과학적 증명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고 현실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엔트로피 법칙’은 세상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쓸데없는 곳에 열정을 헛되이 소모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깨달음을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적 제어와 조절을 통해 특정한 종류의 오류나 불행을 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과학에서 유전자의 법칙은 성장하고 짝을 찾고 자식을 기르고 자신은 죽지만 후대의 유전자를 통해 영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법칙의 흐름 속에는 어떤 주관적 목적이나 의미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유전자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굴레에 묶여서 노예로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이 흐르는 강물 옆으로 인문학적 탐구의 지점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과학이 질문하지 않지만 과학과 함께 흐르는 속에서 다른 질문을 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인 것이다.

 

 

4. 맺음말

저자는 과학을 통해서 삶의 의미까지 찾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삶의 의미라는 것은 과학이 아니어도 명확하게 주어진 것이 없다. 따라서 주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또 찾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찾아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만큼 삶의 의미라는 것은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대신 그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주요한 재료는 인문학과 과학,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의 상호작용이 될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각자가 만들어갈 삶의 의미가 무한히 풍성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식과 지혜의 확장과 해석, 관점은 무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 개인의 삶은 유한하고,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 삶은 자신이 부여하는 만큼, 만들어간 만큼만의 의미를 갖는 것임을 저자는 주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서 사라진 많은 사람들과 역사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각자의 삶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다음을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또 다른 작은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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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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