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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야생학교
지구촌 수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생물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인 들은 어떠한가. 수원청개구리가 멸종 위기에 처해도 골프장을 만들고 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 수백 년 된 원시림도 베는 것이 당연해졌다. 자연은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서로 경쟁하기고 하고 돕기도 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뽐내는 장소다. 그러나 도시라는 협소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은 생태감수성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다양성 존중이라는 진짜 ‘자연의 법칙을 ’잊고 있다. 『김산하의 야생학교』는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 선 영장류학자가 생태감수성의 의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야생의 자연 문제에 대해 경제 등을 내세우며 우선순위 목록에서 내려 보내고 있다. 인간의 이익때문에 자연이 희생되고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저자는 다양한 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그만두고 자연에 귀기울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목적을 위해 더이상의 자연 희생은 없어야 한다고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 선 영장류학자가 이야기한다.
저자
김산하
출판
갈라파고스
출판일
2016.09.22

 

1. 서두

이제 환경오염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 만큼 이제 환경오염이나 환경파괴의 문제는 어떤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사실 환경오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공유되었던 시점은 꽤 오래 전이다. 환경 문제에 관한 고전이라 불리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던 때가 1962년이니까 근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그 책에서 경고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은커녕 더 심각해졌다. 살충제의 남용으로 곤충들의 내성은 더 커졌고, 그에 연동하여 상위 포식자들의 체내 유해물질 축적도는 더 높아졌으며, 토양 오염과 수질 오염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심각해지고 확장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이제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까지 고민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지구 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대중적 관심을 크게 이끌어 냈던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출간 된 것은 2006년이었으니까 이제 10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의 의지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015년 12월에 파리기후협약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구분 없이 많은 국가의 참여로 체결이 되었다. 하지만 2017년에 가장 많은 탄소 배출국 중의 하나이면서 엘 고어의 모국인 미국이 탈퇴했다. 그 때문인지 2018년은 유래 없는 폭염과 홍수, 그리고 태풍과 허리케인, 지진과 해일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제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문제가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어떤 문제도 한 개인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첫 번째는 의식의 변화, 그리고 두 번째는 작은 행동의 실천이다. 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책이 바로 『김산하의 야생학교』이다. 이 책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2. 약육강식

저자는 이 지구를 여러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동식물을 쓸어내 버리고 우리끼리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일단 다 쓸어내 버린 다음에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동식물들을 재배치했다. 예를 들어 먹기 위한 동물은 가축으로 구분해서 우리 안에 가뒀고, 먹을 수는 없지만 적절히 길들여서 함께 지낼 수 있는 동물은 반려 동물로 구분해서 집안으로 들였으며, 먹을 수도 없고 길들이기도 힘들지만 즐겁게 관찰할 수 있는 동물은 야생 동물로 구분해서 동물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품 안에서 재배치한 동물들마저도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다. 대규모의 살처분을 하고, 싫증나면 가차없이 버리며, 동물원을 탈출한 야생 동물은 상황에 따라서 사살한다. 동물 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식물들도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먹을 수 있고 재배가 용이한 식물들을 특별히 선별해서 대규모로 기르고 나머지 식물들은 ‘잡초’나 ‘잡목’이라는 명칭으로 일괄적으로 구분되어 제거된다.

 

이와 같은 인간의 행태에 대해서 일견에서는 인간이 제일 강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다른 동식물들은 도태되거나 지배를 당하거나 밀려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로 정글에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의 법칙은 단순히 약육강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필요한 만큼에 있어서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지만 그 이외에는 서로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도 과거에는 지금보다 동식물을 멸종시키는 빈도수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인간은 어떤가. 항상 뭐든지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고 필요 이상으로 잡는다. 그렇게 잉여물이 늘어나는 만큼 다른 쪽에서는 밀려나거나 죽거나 멸종되는 생물들이 늘어간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과 다른 생물 사이의 문제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선진국들에 의해 개발도상국들의 환경이 파괴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기아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대로 가다 보면 지구 상에 남아있는 생물은 인간 중에서도 돈이 많은 국가의 상류층뿐일 것이다.

 

 

3. 인간 영역의 확장

얼마 전 제주도의 비자림로 확장공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얼마 남지 않은 환경 보존지역이다. 따라서 그 지역 주민들은 외부인의 관심과 반대가 의아하겠지만 제주도가 갖는 청정지역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절대 그 지역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예로 이 책에서는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은 개발과 보전 간의 대립 이슈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투자와 개발이 큰 도시에만 집중되고 지방의 작은 도시들은 계속 낙후된 채로 살아야 하는 것이냐는 항변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이다. 저자는 국립공원은 다른 데는 지지고 볶더라도 여기만큼은 자연에 맡겨두기로 우리가 결정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케이블카 설치가 노인 및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도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들보다 훨씬 약자인 동식물의 권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국립공원인 것이다. 국토의 5~6퍼센트에 불과한 국립공원마저 개발 논리에 따르는 순간 야생의 동식물들은 더 빠르게 사라져갈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제는 바로 ‘축제 공화국’의 문제이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서 각 지역 사회는 자신들만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각종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가장 좋은 것은 큰 공장 단지를 유치하는 것이지만 모든 지역 사회가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친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에 편승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각종 지역 축제이다. 함평의 나비 축제가 처음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많은 축제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금 가장 주목 받는 축제 중 하나는 바로 화천의 산천어 축제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축제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축제를 위해 하천의 바닥을 굴착기로 긁어 내고, 빙판을 인조적으로 만들기 위한 물막이 공사로 생태계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청정 자연을 표방하면서도 양식으로 기른 물고기로 채우는 것을 넘어 부족분을 외래종으로 메우면서 토종 민물고기가 외래종에 잡아먹히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친환경을 표방하면서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4. 맺음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관성이 부족해도 좋다는 것이다. 즉, 일회용품을 계속 사용한다고 해도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환경을 위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행동이라고 각각의 개인이 하게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더불어 생명의 가치가 사람에게만 협소하게 적용될 경우 사람 외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또 한 번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 생명 중시 사상은 급할 때가 되면 자신의 목숨만 부지하려는 이기주의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 중시 사상을 인간을 넘어선 모든 생물에게 공평하게 적용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엘 고어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도 제시했다. 집에서 쓰는 백열등을 형광등으로 바꾸기, 여름에는 2도 덥게 겨울에는 2도 춥게 생활하기, 난방기와 에어컨의 필터를 자주 청소하기, 뜨거운 물을 적게 사용하기, 전자 제품은 안 쓸 때 플러그를 뽑아두기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큰 것을 한 번에 시도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것,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시도해 나갈 때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고, 그 변화된 의식이 모여서 국가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 개인은 저자의 말처럼 환경 보호를 위한 행동에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려야 한다. 때로는 실수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예전에 하던 대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일관되게 환경을 되살려야 한다는 마음만 품는다면 결국은 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에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었던 공동체 문화를 부활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지방 자치는 자신들만 생각하는 지역 이기주의로 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혜택을 입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각 지방에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인기와 유행에 편승한 ‘축제 문화’가 아니라 ‘공동체 문화’가 살아나야 한다. 그렇게 공동체 문화가 살아난다면 굳이 도심과 같은 개발 논리에 매몰되어 자연을 훼손할 필요도 없다. 즉, 외부인의 방문이 없어도 그들 스스로가 자연과 더불어 자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완전하게 자연의 회복력이 유지되던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 마을과 각 지역의 공동체가 활성화 되면 지역민들 스스로도 자신들만 개발과 발전에서 소외됐다는 마음을 접고, 무모하게 자신들이 사는 주변의 자연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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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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