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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세포부터 생태계, 도시, 사회관계망과 기업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성장과 혁신, 노화와 죽음을 지배하는 패턴과 원리에 관한 흥미진진한 과학적 모험담 『스케일』. 복잡성 과학, 즉 창발적 시스템과 네트워크의 과학을 개척한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제프리 웨스트 교수와 샌타페이 연구진의 25년 연구를 종합하여 자연법칙과 인간 문명의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개념 틀을 제시하는 책이다. 우리 모두를 단순하지만 심오한 방식으로 하나로 묶는 근본적 자연 법칙을 찾아나서는 저자는 생물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을 중심으로 스케일링 법칙을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생명체의 성장, 노화와 죽음의 문제를 검토한 후, 이 법칙이 도시와 기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각각의 독립된 장들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도시, 기업, 생명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같은 가락에 맞추어서 똑같이 춤을 추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저자
제프리 웨스트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18.07.30

 

1. 들어가는 말

내가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웨스트 교수를 알게 된 건 2017년경 EBS 과학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이다. 거기서 도시의 규칙성이 소개되면서 산타페 연구소와 그곳의 수장인 제프리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의 물리학자 윤혜진 박사가 등장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전공이 물리학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도시에 관한 연구라면 도시공학자나 사회학자의 몫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충분히 물리학자가 관심을 가질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복잡하고 다양한 것들 속에서 어떤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발견해 내는 것이 또 물리학자를 비롯한 기초 과학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비단 도시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에서도 규칙성을 발견하고, 기업의 성장과 소멸 속에서도 규칙성을 발견한다. 이처럼 전혀 규칙적일 것 같지 않은 것에서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수많은 데이터들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제프리 교수가 제시하는 많은 데이터들도 이미 기존에 발견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제프리 교수를 비롯한 산타페 연구소의 사람들이 대단한 것은 그러한 데이터들을 취합하고 해석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고의 전환이고 창의적 접근일 것이다. 이 책은 급속한 도시화, 성장, 세계의 지속 가능성에서 암, 대사, 노화와 죽음의 근원을 이해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주요 도전 과제와 현안 중 일부를 어떻게 하면 통합된 단일 개념 틀로 파악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애초에 물리학자가 모든 분야를 아우르려는 시도 자체가 조금은 무리수가 있지만 제프리 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2. 생물의 스케일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로 생물은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복잡성이 증가했지만 세포나 미토콘드리아, 모세혈관이나 나무의 잎 같은 기본 구성 단위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현재 1조분의 1그램도 안 되는 세균부터 수억 그램이 나가는 대왕 고래까지 800만 종이 넘는 생물이 살고 있지만 그 모든 생명체들의 기본 구성 단위와 작동 방식이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코끼리는 쥐보다 약 1만 배 더 무겁고, 세포 수도 약 1만 배 더 많다. 그런데 두 동물의 대사율에는 4분의 3제곱이라는 ‘스케일링 법칙’이 존재한다. 즉, 세포 수는 1만 배 더 많지만 대사율은 1000배만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비례 법칙을 따르지 않지만 분명한 규칙성이 있다. 그런데 대사율에서 이러한 식의 규칙성이 나온 것은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코끼리가 쥐 보다 훨씬 크지만 코끼리의 세포는 쥐의 세포 보다 에너지를 대략 10분의 1 정도만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규칙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당연히 제프리 교수가 아니다. 막스 클라이버라는 생물학자였다. 그래서 이 생물의 대사율에 관한 스케일링 법칙은 특별히 ‘클라이버 법칙’이라고 부르고, 이 법칙은 포유류, 조류, 어류, 갑각류, 세균, 식물, 세포까지 포함한 거의 모든 분류군에 적용이 된다고 한다.

 

생물의 스케일링 법칙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어떤 공통된 리듬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싱크 이론’의 내용도 떠올랐다. 반딧불이 어느 순간 동조를 이루면서 같은 타이밍으로 불을 반짝이는 거나 귀뚜라미들이 마치 미리 마음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소리를 내는 것도 생물의 규칙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곤충들을 넘어 인간들도 같은 공간에서 같이 머물면 조금씩 패턴이 닮아간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우리 몸의 세포나 각종 장기들의 본능적이고 규칙적 운동도 분명 어떤 이 세상의 공통된 리듬을 기준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창발적 행동들은 혼돈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혼돈스럽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패턴 속에서 결국은 어떤 규칙성을 찾아낸 과학자들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도시의 스케일

저자는 생명체의 스케일링 법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본인의 연구 결과를 설명한다. 그것은 바로 도시이다. 도시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들도 많다. 그리고 그 도시는 어떤 식으로 탄생을 했든 사람들이 성장시켜 나간다. 그런데 사람의 행동은 복잡하다. 한 개인의 행동도 예측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성장과 변화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저자는 그 복잡해 보이는 도시에도 생명체와 마찬가지의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도시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 장점은 문명의 용광로, 혁신의 중심지, 부 창조의 엔진, 권력의 중심, 창의적인 사람을 끌어들이는 자석, 착상과 성장과 혁신의 자극제라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범죄, 오염, 가난, 질병, 에너지와 자원 소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열역학 제 2 법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도시도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기에 도시가 활동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긍정적 성장을 위해 일부가 쓰이고, 불필요하게 남는 잉여의 에너지가 발생한다. 긍정적으로 쓰인 에너지는 도시의 장점으로 작용하고 불필요하게 남은 에너지는 도시의 단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물리학의 법칙을 근간으로 도시를 바라본다면 어떤 작용의 규칙성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설을 세우는 것과 실제 그것을 증명해 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고, 결국 그것을 증명해 낸 제프리 교수의 유능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시의 스케일링 법칙은 ‘15%의 법칙’으로 대변된다. 도시는 그 크기가 증가할수록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속도도 규모가 증가한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질병은 더 빨리 퍼지며 새로운 기업도 자주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약 15% 증가 규칙을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의 기반 시설은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량적인 비례 법칙으로 같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즉, 도시가 두 배가 커지면 기반 시설은 같은 비례로 두 배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85% 정도만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주유소 같은 것도 비율적으로 큰 도시가 작은 도시에 비해 더 적은 비율의 주유소만 가지고도 더 큰 효율을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도시 거주민은 2006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걸쳐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2050년에는 20억 명 이상이 더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화율이 75%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35년 동안 매주 대략 150만 명이 도시로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도시는 생명체와 또 다른 면모를 가진다. 생명체가 닫힌 지수 성장을 갖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장을 한 뒤에는 그 속도가 줄어들고 결국은 죽게 된다. 반면 도시는 열린 지수 성장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멸되지 않는다. 더구나 치유력도 좋다. 그래서 원자폭탄으로 완전 폐허가 된 나가사키나 히로시마 같은 도시도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원상복구 되어 번창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도 열역학 제 2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에 엔트로피 증가에 대응하려면 성장, 혁신, 유지, 수선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숙명에 놓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지구상의 여러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그 크기에 걸맞는 적정 대사율이 있고 그 대사율에 맞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한 인간의 대사율은 대왕고래의 대사율에 준할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도시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에도 현재 인구인 73억 명 보다 30배는 더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자연의 생태적 평형에서 한참을 어긋나 있다. 그렇다고 이를 해결한 어떤 혁신적인 방법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는 현재 과중한 부담을 느끼고 있고 그 결과로 지구 온난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 내용을 보면서 도시는 분명 일반 생명체와 같은 쇠락이나 소멸의 과정을 밟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에너지 소모를 통한 엔트로피 증가는 분명 단계적인 쇠락이나 소멸이 아닌 기후 변화에 의한 일순간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소멸된 뒤에는 조정 기간을 거쳐 다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프리 교수의 결과물들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부터 생태적 평형에 이르기 위한 노력들을 하면서 어떤 혁신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기업의 스케일

기업 또한 도시처럼 인간이 만들고 구성한 존재이다. 하지만 기업은 도시의 성장이나 유지와 달리 생명체와 같은 성장과 정체, 그리고 죽음을 맞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의 스케일링에서는 그 주요 척도 중 상당수가 도시처럼 초선형이 아니라 생물처럼 저선형으로 규모 증가가 이루어진다. 그 만큼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기업이 무한한 성장과 확장을 이루면서 영생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내용에 관해서는 기업의 CEO들이 소중하게 간직할 만한 예측은 아니라고 농담조로 말한다. 한편 기업가들과 비슷한 시각을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경제학자들이다. 그들도 기업가들과 마찬가지로 붕괴가 임박했다거나 궁극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맬서스주의 형태의 개념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합리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증명된 것만 받아들이는 물리학자나 생태학자는 맬서스주의 형태의 개념을 안 믿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 차이의 결과로 기업가들을 비롯한 경제학자, 사회과학자, 정치가 등은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견해로 일반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그런데 이 기업의 스케일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는 부정적 전망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또한 경제학자나 기업가들은 지속적이면서 유기적인 성장이 계속되어야만 할 말이 있고, 특히 기업가는 계속 낙관적 희망을 제시해야 사람들에게 더 많은 물건을 팔 수 있다. 결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건재하는 한 모든 것이 사라지거나 무너지기 전까지 그 어떤 합리적 방법을 만들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의식이 깨어나서 이 세상을 물리학자나 생물학자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우리는 어떤 새로운 혁신을 통해서 결국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5. 맺음말

저자는 생명체든 도시든 기업이든 지속적인 성장이 유지되려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혁신들 사이의 시간 간격이 더 짧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의미있는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는 1870년대 이후 새로운 아이디어로 나온 특허는 드물고 기존의 아이디어가 조합되어 나온 ‘조합특허’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합의 경우의 수가 거의 줄어들 시점에는 분명 혁신의 속도는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느려질 수 있다. 저자는 이러너 비유를 한다. 지금의 우리는 늘 점점 빨라지고 있는 한 대의 가속되는 트레드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시기가 되면 더 빠른 트레드밀로 갈아타야 하고, 그 뒤에는 더 빠른 간격으로 또 다른 더 빠른 트레드밀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식으로는 과연 그렇게 빠른 간격으로 더 빠른 트레드밀로 갈아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지금 보다 더 빠른 트레드밀이 계속 나올 것이라 낙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트레드밀의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한 그 위의 우리는 결국 트레드밀에서 떨어져서 한 방에 끝이 날 것이다.

 

저자는 또한 기온이 2도 변화하면 그에 따라서 생명체의 성장률과 사망률은 20~30퍼센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2도가 올라가면 거의 모든 생물학적 삶의 속도는 20~30퍼센트가 상승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조만간 갑자기 나가떨어질 수 있는 빠른 트레드밀에 이미 올라선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지포스의 불행 보다 더 큰 불행한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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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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