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비행운
2010년대 대표 작가로 떠오른 김애란의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비행운(飛行雲)’과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 ‘비행운(非幸運)’ 사이에서 지친 이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택시기사,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받는 화장실 청소부, 살아서도 죽어서도 박스를 줍고 계신 할머니 등 세상에서 살아남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이들. 사람들은 ‘비행운(飛行雲)’의 꿈을 꿀수록 ‘비행운(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동세대의 실존적 고민을 드러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 매력을 발휘하며, 좀더 강력해진 성장통을 보여준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처럼 우리의 고통을 이해해줄 것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
김애란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12.07.19

 

1. 서두

잊고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해 오면 그 사람과 공유했던 과거의 시공간이 한꺼번에 오버랩 된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추억이 긍정적이었고, 그 사람이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면 재회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생긴다. 그런데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했던가. 많은 만남이 그렇지만 보통은 실제 만남 자체 보다 대부분 그 만남을 준비하고 상상하는 시간이 더 즐겁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 만남은 보통 예상과는 다른 느낌일 경우가 많고, 그 예상 밖의 결과 속에서 또 다른 인생의 통찰을 얻고는 한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라는 단편 소설도 재회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엉뚱한 결과와 새로운 통찰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2. 줄거리

이 소설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이 같은 대학에 다니던 선배에게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날은 또 주인공의 초등 동창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대학 때 동경하고 좋아했던 선배의 전화와 함께 초등 동창의 죽음에 대한 안 좋은 기분 보다는 대학 때의 좋은 기억을 두서없이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청춘의 설레임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과거 누군가 자신에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답했던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배가 그렇게 주인공의 부재를 인식하고 자신을 찾은 것이라고 자기만의 상상에 빠진다. 그런 달콤한 상상 속에서 선배를 만날 준비를 하고 나선 주인공에게 현실은 아주 냉혹햇다.

 

선배가 주인공을 찾은 것은 방송 일을 하면서 주변에 몸이 풍만한 사람을 급하게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의 기억에 대학 때 주인공은 풍만한 후배였기 때문이었다. 얼떨결에 주인공은 자신의 살찐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으로 갈이입고 핫도그를 최대한 빨리, 많이 먹는 장면을 촬영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 때 선배가 자신에게 관심 있다고 착각하게 했던 ‘고개 좀 들고 다녀라, 이 녀석아.’ 라는 멘트를 방송 촬영 중에 전혀 상반된 느낌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방송 촬영 중에 선배는 부끄러움과 어색함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핫도그를 먹고 있던 주인공에게 신경질적으로 휘갈겨 쓴 도화지 속의 ‘고개 좀 들어, 이 녀석아.’ 라는 글귀를 보여줬다. 그 글귀는 주인공이 선배를 만나러 오기 전에 떠올렸던 대학 때의 낭만과 감상,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각종 사상과 철학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방송 촬영 뒤로 주인공은 초등 동창 병만을 떠 올린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인생의 아이러니를 통찰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러한 생각을 말한다. ‘내가 살이 있어, 혹은 사는 동안, 어디선가 누군가 몹시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절망적 상황과 초등 동창의 죽음 속에서 자신이나 동창처럼 아무도 모르게 아파하고 견뎌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방 안에 누워 형광등 불빛을 응시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눈을 꼭 감는다.

 

 

3. 서평 및 맺음말

이 소설은 선배의 부탁으로 방송 촬영을 하면서 느끼는 서글픔이나 초등 동창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비해서 초반에 자신만의 대학생 때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부분의 내용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서론이 너무 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자신만의 착각에 빠졌던 기억 때문에 그 뒤의 결정적 사건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런 큰 자신만의 상상의 영역이 있었기에 현실의 모습이 더욱 절망적일 수 있는 것이고, 먼저 죽은 초등학교 동창이나 기타의 다른 이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고개 좀 들고 다녀라, 이 녀석아.’와 ‘고개 좀 들어, 이 녀석아.’ 라는 멘트를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한 번, 그리고 현실 속에서 다시 한 번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이 과거의 환상 속에서 빠져나와 제대로 현실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고, 독자에게도 그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그 만큼 우리는 과거의 기억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되새김질하면서 제대로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즉, 과거의 우리 기억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 객관적이고 명확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선배의 전화를 받은 날과 초등 동창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 공교롭게 같은 날이라 너무 작위적 구성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작위적이어 보이는 우연적 상황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런 우연적 동시성 속에서 마치 정반합의 원리처럼 강렬하게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이러한 우연적 사건 배치도 크게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깨달음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특히 ‘여름옷을 주렁주렁 매단 2단 옷걸이가 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굽어보고 있었다.’ 라는 문구를 통해서 우리들도 주변에서 흘러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인내를 그렇게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도 주인공처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서글픈 상태에 봉착했을 때 비슷한 기분에 휩싸일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만큼 이 소설은 충분히 위트 있고 동질감이 느껴지는 표현과 고성을 통해서 잔잔하게 인생의 또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777lili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