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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넘어서
화성남자와 금성여자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일과 삶 모든 영역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성 역할에 따른 대립과 갈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화성남자와 금성여자를 위한 명쾌한 해법! 변화하는 역할 속에서 남녀가 균형을 찾아 함께 성장하는 방법부터 정서적으로 충만한 관계를 만드는 공감의 기술까지. 일과 사랑, 부부생활 모두에서 복잡하게 얽힌 감정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다양한 방안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더 깊어진 통찰, 더 실용적인 해법으로 관계에 지친 현대인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필독서.
저자
존 그레이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18.09.14

 

1. 서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위 책은 여전히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만큼 남자와 여자의 태생적 본성에 집중했기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위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에 비해서 비율적으로 남녀 관계의 문제가 크게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이혼률은 증가하고 있고, 불륜의 표현마저도 너무 자연스러워진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위 책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시 기준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실천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어떤 명확한 비교 대상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것과 여자는 문제 해결 이전에 소통을 더 중요시 한다는 것 등은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대는 위 책이 출간되었던 때와 비교할 때 크게 변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 권위 신장과 성별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그래서 지금 시대는 비단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내면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여성의 남성성이 커지고 권장되는 것과 비등하게 남성의 여성성도 커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남녀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야 남녀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 사람 내면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넘어서󰡕라는 책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를 조망하고 있다.

 

 

2. 차이가 끌어당기고 열정을 지켜준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시작할 때에는 그 끝을 염두 해 두지 않는다. 열정적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고 관계를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남녀 관계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관계를 좀 더 긍정적으로 유지해 가자면 자신에 대한 이해와 함께 상대 성별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저자는 ‘남녀의 차이’를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핵심으로 본다. 즉,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처음의 끌림이 생기는 것은 둘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 차이가 유지될 때 또 관계의 지속성이 길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남녀의 신체적, 호르몬적 차이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녀 각자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잘 표현하고 유지하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서로가 지지해 줄 때 관계는 유지된다. 서로간의 차이를 유지하는 관계는 처음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예측 가능한 편안한 관계가 되더라도 서로간의 매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보통의 남녀 관계에서는 사랑이 시작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급격히 동화되어 간다. 그래서 서로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만남을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차이를 최대한 줄이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가 거의 줄어들 즈음에 보통은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다시금 각자 고유의 정체성과 시간, 공간 등을 찾으려 한다.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해결점을 찾으려 하거나 헤어지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게 문제를 회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다시금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그것을 보장해 주게 되면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더 빨리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남녀의 관계에서는 애초에 시작부터 좀 거리감을 두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를 느낀 뒤에는 이미 많은 것이 늦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사랑이 불붙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절히 거리감을 두는 게 가능할까 싶다. 사랑의 시작에서는 마치 아궁이에 던져진 땔감 마냥 순간적으로 하나로 강하게 합쳐지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해결책이라는 것은 그냥 하나의 이론적 기준일 뿐이고 현실에서 저 방법을 사용하자면 그 전에 몇 번의 연애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헤어졌던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남녀 사이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따른 거리감을 서로 적당히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3. 화성에서 온 테스토스테론과 금성에서 온 에스트로겐

저자는 남녀 사이의 차이에서 성 호르몬의 영향력에 대해 강조한다. 어떤 역할을 하든 성 호르몬과 관련된 정서적 욕구를 알게 되면 훨씬 더 풍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성과 여성성을 극단적으로 나누지는 않는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일부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만의 고유한 성 호르몬 조합을 발견하고 수용해야 더 큰 사랑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남성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여성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다른 성 호르몬보다 반드시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좀 더 남성성을 자극하는 활동에 몰두하는 게 좋고, 여자들은 폭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성성을 자극해야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가 추구하고자 하는 내면의 본성을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저자는 남성의 폭력적 행동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때문이 아니라 성 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본다. 즉, 남성이 폭력을 행사할 때 테스토스테론이 에스트로겐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성의 성 호르몬이 테스토스테론 보다 에스트로겐 비율이 커지면서 폭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적인 성의 특성을 억압하거나 벗어나려 하지 말고 그 특성에 맞는 활동과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남성은 동굴 속에서 쉴 시간이 있어야 하고 여성은 주변과의 소통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남성은 SNS와 통신의 발달로 자신의 동굴의 시간 보다 외부적 소통의 시간이 너무 많다. 또한 여성은 남녀 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 남성과 동등한 문제 해결과 결과 지향적 행동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다. 그러면서 남녀 모두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사회적 트러블이나 남녀 간의 트러블이 커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남녀 간의 역할의 구분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성 호르몬에 맞는 행동의 구분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남성에게 맞는 행동과 여성에게 맞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자연스럽게 역할의 구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진취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남성적 리더와 소통성과 공감력이 좋은 여성적 리더의 구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자가 여성성을 가미한 소통과 공감을 하는 리더가 된다면 그 자체로 그 남자는 성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보다는 자기다움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더불어 성 호르몬이라는 것은 어떤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스펙트럼처럼 이어져 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이지만 내면에서는 여성적 발현을 통해 더 행복감을 느끼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자에게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늘어나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면서 폭력성이 나타난다는 말도 동의하기 어렵다. 남자 동성 연애자들의 경우 주기적으로 여성 호르몬을 주입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절대 다수가 폭력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저자는 남자의 ‘집착’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발현된 결과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집착’이라는 것이 본디 여자의 특성이라는 건데 남자들의 집착심 중 하나인 소유욕은 인류의 태생과 함께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그 소유욕 때문에 수많은 폭력적 전쟁이 벌어졌다. 따라서 저자의 호르몬적 불균형에 따른 부정적 성향 발현의 근거가 결코 타당한 것 같지 않다. 그 만큼 저자의 주장은 보편적 기준이 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4. 당신 시간, 우리 시간, 내 시간

저자는 당신 시간, 우리 시간, 내 시간에 대한 적절한 균형에 대해서 설명한다. 당신 시간은 직장에서의 유대를 말하고, 우리 시간은 배우자나 연인과의 유대, 내 시간은 사회적 유대와 자립을 의미한다. 여기서 여자는 ‘우리 시간’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어야 직장에서의 ‘당신 시간’에서 벗어나 집에서의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역으로 남자는 ‘내 시간’이 적절히 지지와 보장을 받으면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가 되어야 ‘우리 시간’을 즐기고, 여성이 ‘내 시간’을 갖도록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각자 호르몬에 맞는 기준이 되는 시간이 보장이 될 때 다른 시간에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고 서로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내용에서도 남성에게 중요한 시간과 여성에게 중요한 시간의 구분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역시나 백 프로 동의하긴 힘들다. 남성 중에도 ‘우리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여성 중에도 ‘내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세 가지 시간의 구분과 함께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에게 중요한 한 가지 시간에 넉넉하게 시간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기준이 되는 시간은 필요하고 그것이 근간이 되어야 다른 시간들도 포용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경청을 원하는 여자, 인정을 바라는 남자

저자는 여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청을 원하고, 남자의 경우 자신을 인정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또한 여자와 남자로 극단적 구분을 하는 건 문제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경청을 원하는 여자, 인정을 바라는 남자’라는 표현 보다 ‘경청을 원하는 사람, 인정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즉, 남자와 여자의 구분 이전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청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그 경청의 욕구를 채워줘야 하고, 인정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또 충분히 그 인정 욕구를 채워줘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면에 소위 말하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의 비율이 얼마만큼 작용하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다 보면 상대방이 어떤 것을 더 원하고 있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여자는 남자의 보살핌, 이해, 존중이 필요하고, 남자는 여자의 신뢰, 수용, 인정이 담긴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자도 여자 못지 않게 보살핌, 이해, 존중을 필요로 하고, 여자도 남자 못지 않게 사회 속에서 신뢰, 수용, 인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의 이런 마음의 욕망 구분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필요한 것 같다. 사람 마다 분명 그 원하는 바가 틀리고 행복의 기준이 틀리기 때문이다.

 

 

6. 맺음말

이 책이 제목처럼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넘어서’가 되려면 기존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에서 취했던 남녀의 성향 구분을 단순히 성 호르몬적 차원에서만 추가적 부연 설명을 했으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과 여성을 넘어서 사람을 기준으로 좀 더 큰 다양성의 모습을 반영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근 20년전의 사고 틀을 크게 벗어난 것 같지가 않다. 더불어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저자의 기존 책이 어떤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면 어떤 통계학적 결과에서 긍정적 변화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건 없고, 오히려 더 상황은 복잡해졌다. 그래서 역시나 성 호르몬의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현재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 문제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런 식의 이론적 구분의 노력은 계속 될 필요는 있다. 우리가 어떤 기준을 정하려 하는 것은 무조건 그 기준을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바탕으로 현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이 백 프로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또 역시나 필요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다만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나 아니면 성 소수자의 관점에서, 나아가 성 평등 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충분히 비판의 여지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을 근간으로 또 좀 더 발전적 생각의 기준이 탄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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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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