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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는 70대 중반의 ‘할아버지’ 조정래 작가와 고등학교 2학년생 ‘손자’ 조재면 군이 2016년 말부터 2017년 말까지 약 1년여 동안 글로 써내려간 논술 대화를 모아 엮은 책이다. 주목할 만한 사회 문제에 대해 손자가 먼저 논술문을 쓰면, 할아버지는 그 글을 읽고 교정할 곳을 꼼꼼히 표시한 후, 자신의 의견을 한 편의 글로 집필해 화답했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당장 논술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나이와 성별, 지역과 계층을 가로질러 사회 통합의 관점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선사할 것이다. 1장 '단 하나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에 대해 손자가 ‘빗나간 효도’의 관점에서 글을 썼고, 조정래 작가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결코 권력자 한 명의 시각으로 정리될 수 없으며, 다양한 해석을 통해야만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음을 설파했다. 2장 '기업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에서 손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통해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공자의 ‘의로움[義]’에 있음을 주장했고, 작가는 금전만능주의가 가져온 사회의 불안과 고통에 대하여 논했다. 3장 '청소년의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한가'에서 손자는 게임이라는 매체를 대하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무게중심을 둔 반면, 작가는 국민과 온도차가 있는 법 제정의 문제점을 질타했다. 4장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5장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역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문제를 세대를 뛰어넘어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저자
조정래, 조재면
출판
해냄출판사
출판일
2019.07.20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관점이 존재한다. 각자의 관점은 또 동일한 주제에 관해서 집단화가 형성된다. 집단으로 형성된 관점은 차이가 생기고 심해지면 차별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많은 차이와 차별이 있다. 세대 차이나 차별, 성적 정체성의 차이나 차별, 지역별 차이나 차별, 종교적 믿음의 차이나 차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나 차별을 조정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류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차이와 차별을 조정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 서로의 관점을 알아야 접점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이다. 그래서 세대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관점을 알 수 있다.

 

1장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한 주제로 서로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손자는 이 주제에 관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관점만을 반영하며, 국민의 사고를 획일화 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할아버지는 손자의 생각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 주제를 보면서도 마지막에는 새로운 관점을 추가한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사 국정 교과서를 비롯한 많은 실수 덕분에 국민이 탄핵을 성공시켰고, 나라의 주인임을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애틋한 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사랑 받으면서 커온 모든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에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결과물에 반영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특히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관점이 아닌 많은 관점을 수용하고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반영되고 인정되어야 한다는 두 사람의 의견에 공감한다.

 

2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기업 윤리’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손자는 기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먼저 말한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고, 정부는 기업의 이윤 추구에 대해서 감시하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면서 경제 성장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는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보다 도덕성을 잃은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업은 이윤 추구 이전에 공자의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할아버지는 기업과 정부, 둘 다 비판한다. 기업은 책임을 회피하려 노력했고, 정부는 그 기업의 행위를 방임하고 감시의 의무를 소홀히 했으며 처벌에 있어서도 너무 관대했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손자가 제시한 ‘의로움’의 관점은 너무 교과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탄하는 할아버지의 관점도 막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제 탐구를 시작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도 제시해 보는 게 논의의 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사망자와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잊혀져 가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장은 ‘게임 셧다운제’에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손자는 청소년들의 생각이나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이해 없이 기성 세대가 일방적으로 만든 미성숙한 제도라고 비판한다. 한편 할아버지는 주입식 교육 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국가적 직무 유기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일본식 교육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제는 손자의 세대가 아니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손자가 보는 ‘게임 셧다운제’에 대한 관점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보통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닥친 일이 아니면 흘러가는 대로 지켜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많은 문제들은 결국 돌고 돌아서 자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한국의 잘못된 교육 제도를 비판하면서 독일이나 북유럽의 교육 제도를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교육 제도를 그대로 차용하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관점으로만 현 교육 제도를 비판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4장에서는 ‘남녀 평등’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한다. 손자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개선하자’는 정도의 구호를 넘어 남자와 여자가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할아버지는 역사적 관점에서 남녀의 문제를 조망한다. 비극의 뿌리는 남녀의 역할 분담이었고, 그것은 남자의 권력 독점과 함께 여성을 하나의 소유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결론은 손자의 생각과 같이 간다.

 

이 주제를 보면서 성별을 근간으로 하는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갔다. 하지만 남녀의 성 평등을 비롯하여 완전한 평등이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를 설파했다. 두 사람만 존재해도 그 사이에서는 권력의 차이가 서서히 생겨난다는 것이다. 집안 일만 봐도 백 프로 동등한 역할 분담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업 관계에서도 동업을 했을 때 완전하게 평등한 역할 분담은 어렵다. 그리고 동일한 상황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속에서 또 틈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남녀 평등을 비롯한 모든 평등은 불가능하다. 다만 끝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비만’에 관해서 말한다. 손자는 뒤르켕의 󰡔자살론󰡕에서 주장한 내용을 근간으로 비만도 자살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문제임을 주장한다. 한편 할아버지는 식탐에 빠졌던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비만은 사회의 관점보다는 개인의 문제라는 시각을 드러낸다. 그래서 마지막에도 과하게 먹지 말고 알맞게 먹는 게 자기 사랑의 길이라고 말한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할아버지는 지속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마음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비만에 걸린 사람들의 식탐을 비난하기 이전에 그 식탐이 발생된 연원을 볼 필요가 있다. 비만이 질병으로 규정됐고, 질병이라는 것은 무조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자가 비만을 자살의 관점에서 이해한 것에 대해 더 큰 공감이 갔다. 차이와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설령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서 다룬 주제는 이 책의 저자인 손자와 할아버지만의 것이 아니다. 이 사회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주제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각종 차이와 차별은,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두 사람의 관점과 주장은 또 다른 목소리가 탄생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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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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