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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일자리 패러다임과 노동 환경의 변화에 대한 리프킨의 예견 '노동 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인 책! 기술 진보가 고용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기계의 인간 노동력 대체, 그리고 제3의 부문에서 창출될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
저자
제러미 리프킨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5.05.20

 

1. 서두

제러미 리프킨이 지은 이 책은 이후 그가 집필은 또 다른 책들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의 근간을 이룬다. 그만큼 이 책은 오래되었지만 또 탁월한 면이 있다. 그리고 그가 이 책에서 예견한 것들이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고, 현재 진행형인 것도 있으며, 구체화되기 위해 계획되고 있는 것도 있다. 물론 그가 익히 예견하고 그에 맞게 대안을 제시한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과에서 무언가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끊임없이 시대를 판별할 기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들을 통해 제시된 대안은, 결국 우리가 향해 가야할 지향점을 알게 해 준다. 이 책의 제목인 ‘노동의 종말’은 그 자체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이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우리의 노력에 따라 우리 인류가 한층 더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들을 추리고 개인적 의견을 정리해 보았다.

 

 

2. 본문

- 테크노크라트

과거 미국에서는 소위‘테크노크라트(Technocrat)’라는 개혁 집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마치 플라톤의 철인정치처럼 특정 우수한 집단들이 중심이 되어 과학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인간을 통치하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이는 또 다른 의미의 독재 권력이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는 불피요하게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들이 그렇게 과학을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이 인간 스스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보다 낫다고 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술 혁신이 효율성을 만들고, 그 효율성을 통해 인류의 근본적 문제인 빈곤을 영원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논의가 완전히 현실화되지는 않있지만 우리는 실제로 더욱 많은 기술 혁신과 진보를 이루었고, 경영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왔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인류는 더 나아졌을까. 지금 우리 주변을 잠시만 둘러봐도 그 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집단은 훨씬 더 부유해졌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갈수록 생활이 각박해지고 있고, 최하 빈곤층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물론 국가적으로 손을 놓고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부의 재분배와 기술 재교육을 통한 재취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은 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향후의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기술 재교육을 통한 재취업은 불가할 것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재교육을 통해 할 수 있는 일 마저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보화 시대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된다. 이 책에서는 그들에 대하여 화이트 칼라나 블루 칼라가 아닌 ‘실리콘 칼라’라 명명한다. 이러한 새로운 노동 집단의 탄생은, 결국 지금까지 이 시대를 이끌어온 화이트 칼라나 블루 칼라의 직업군들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해 오던 일은 기계가 정보화 시스템이 대체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이 책의 제목처럼 노동의 종말이 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굳이 제러미 리프킨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한 기술 혁신이든 경영 혁신이든, 그것이 결코 모든 인류에게 공평한 행복과 유토피아를 부여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관리할 소수의 엘리트만 필요한 세상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 향후 발생할 문제들

노동의 종말은 어느 순간 깜짝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서히 하나씩 하나씩 기계와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미 산업혁명 이후에 많은 수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재조정되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그만큼 일자리가 사라지는 많은 노동자들의 저항은 거세질 것이다. 또한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저항의 중심에는 단지 블루 칼라만이 아닌 화이트 칼라도 있다. 더불어 저항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것은 바로 범죄의 증가이다. 일자리를 잃고 재교육을 통한 재취업도 불가능한 상황이 됐을 때, 먹고살기 위한 유일한 선택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약육강식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많은 수의 실업자와 그들이 힘을 합친 범죄 집단은 공권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고, 설명 공권력이 제어를 한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머물게 할 공간과 음식의 해결, 관리 등의 문제가 남는다.

 

또 다른 우려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새로운 권력 집단의 탄생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나 나치 정권이 탄생하는 배경과 같다. 현 상황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사람들의 지지를 모으고, 결국은 그것을 집단화 하여 독재 권력을 획득하고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역사에서 보듯이 역시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고, 심지어 단순한 범죄율 증가 이상으로 많은 인류의 목숨이 파멸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논의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과학이 모든 것을 대체하고 노동이 종말을 맞이한 뒤에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 공동체 의식을 활성화 하여 또 다른 긍정적 집단 문화 속에서 새로움을 향한 창의적 시너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듣기만 해도 무언가 천국을 연상시킨다. 젖과 꿀이 흐르고 천사들이 노래하며 각자 하고자 하는 바를 즐겁게 행할 수 있는 천국 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나 천국은 하나의 이상적 꿈인 것처럼, 인류가 의식주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즐거움과 행복만을 추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설령 이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 인류가 과거 노동의 가치를 통해 인식해 오던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즐거움과 행복만으로 살 수 있는가의 문제 말이다. 왜냐하면 행복을 향한 과정에서의 고통이 없을 때, 인류는 큰 지루함에 빠질 수도 있고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실제 삶을 포기하고 그냥 기계가 다채롭게 고통과 행복을 만들어주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노동의 종말이 아닌 인류의 종말이 될 것이다.

 

 

- 저자가 말하는 대안과 그에 대한 비판

저자가 말하는 대안은 최종적으로 노동의 종말이 도래하는 시대 이전에, 그 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완충의 대안이다. 그가 말하는 첫 번째 대안은 제 3부문의 일자리 창출이다. 기존의 많은 일자리 상실에 대비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만 이 새로움이라는 것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역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기존에 있던 역할 중에서 돈을 받지 않고 하던 것들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와 사회봉사 등이 그것이다. 그냥 무상으로 사회 공동체에 헌신하기 위해 하던 행동들에 급여를 주자는 것이다.

 

이는 참신한 듯 하지만 애매한 문제가 있다. 무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무상으로 그 일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묶고 급여를 준다면, 과연 순수한 봉사 활동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불어 급여를 받는 봉사 활동이 과연 순수한 봉사 활동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는 결국 급여를 주기 위한 명분인 것인데, 그렇다면 굳이 봉사 활동이 아니어도 기계들이 대체한 일들 중 일부를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어차피 봉사 활동에 해당하는 일들도 기계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두 번째 대안은 노동 시간의 단축이다. 이는 이미 프랑스에서 주당 35시간의 노동을 법제화 하기도 했다.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노동 시간의 단축과 여가 시간의 확대는 큰 논의의 대상되었따. 하지만 일부에서는 다시금 노동 시간의 증가를 통한 국가 경쟁력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한 명이 8시간 동안 할 일을 두 명이 4시간씩 나누어 한다면, 이러한 단축 근로를 과연 모든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이상적으로 보였던 노동시간의 단축이 비정규직의 증가와 더불어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동 시간의 단축을 하나의 명분으로 삼은 기업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해고와 고용을 자기들 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노동 시간의 단축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기업의 존재 가치는,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저자의 대안이 완전히 성공하자면,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하고 국가가 기업을 장악하게 되면, 다시 또 자유주의에 대한 억압의 문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더불어 한 사람이 할 일을 두 사람이 나누어 하게 되면, 한 사람의 여가 시간은 증가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임금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임금이 줄어들게 되면 당연히 여가 시간이 많아져도 여가 활동은 줄어들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세 번째 대안은 군비의 감축이다. 그리고 그 감축한 군비로 직업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 급여와 복지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상당히 이상적인 대안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군비 증가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군비 증가는 각 국가의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모든 나라가 군비 감축이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또 모든 나라가 다른 모든 나라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인접 국가가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군비 감축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국가가 일단 전쟁 억제를 위한 합리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고, 그 시스템이 어느 특정 국가만을 편들지 않게 한 뒤라면 군비 감축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 시스템은, 결국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될 것이기에, 이 또한 다른 문제에 봉착할 수 있을 것이다.

 

 

3. 맺음말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일자리 감소가 다시금 우리가 진정 꿈꾸던 유토피아로 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의 모든 일들이 기계로 대체되고, 그것을 통해 창출된 부가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면, 인류는 좀 더 새롭게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대안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온 수년 전 이후로 그가 말하는 대안 중 일부가 실행되기는 했지만, 무언가 모든 국가와 인류가 공통적으로 납득할만큼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없다. 심지어 애초에 실행되지도 못한 것들도 많다.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이 출간된 이후로 여전히 노동의 종말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빈부격차는 더 커졌고, 국가 간 분쟁은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 의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과정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하고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를 예측해 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며 조정해 가는 과정이 인류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노동의 종말과 더불어 인류의 종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미래를 향한 과정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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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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