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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1
▶ 아동심리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전문서적입니다.
저자
토리 헤이든
출판
아름드리미디어
출판일
2019.06.12

 

1. 서두

이 세상에 벌어지는 많은 강력 사건의 범인들에 대한 과거를 추적해 보면,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악한 성향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닌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흡수력이 얼마나 좋은지는 자신의 자식이 없더라도 주변의 아이들을 관찰하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이곳 저곳으로 이사를 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이나 주변에서 벌이지는 상황이 반복적이면 선악의 구분없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또 아이들의 흡수력이 좋은 만큼, 또 변화의 유연성도 뛰어나다. 따라서 어떤 한 아이가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계속 그렇게만 성장할 것이라 단정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면을 관찰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아이에 대한 어떤 단정이나 편견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을 실제 사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2. 줄거리

이 책의 주인공은 쉴라라는 여자 아이이다. 쉴라의 어머니는 쉴라를 버리고 남동생만 데리고 떠났다. 그런데 쉴라에게는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에 대한 기억과 동생이 보고 싶은 간절함에만 잠겨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학대하는 알콜과 마약에 중독된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쉴라가 사는 곳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빈민촌이기도 했다. 그렇게 쉴라는 울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지만 폭력적인 아이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쉴라가 6살 때 3살짜리 남자 아이를 나무에 묶어 놓고 불을 붙여 죽이려던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그 남자 아이는 생명을 건졌지만 몸에 큰 화상을 입었고, 그 사건은 크게 지역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 쉴라는 그 사건 뿐 아니어도 금붕어의 눈을 도려내는 등의 폭력적 행동을 쉽게 저질렀다.

 

쉴라는 그 사건 이후 주변에 정신 병원이 건립되는 대로 그곳에 입원하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단은 문제가 많은 아이들만 모아둔 특수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토리 헤이든 선생님을 만난다. 그런데 토리 선생님은 이미 신문에서 쉴라의 사건을 접했고, 그 당시 심한 역겨움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심한 거부감과 함께 쉴라를 자신의 학생으로 받아들인 뒤에도, 토리 선생님도 계속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토리 선생님 마저도 쉴라를 보는 초기의 마음이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쉴라에 대한 접근 방식은 분명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쉴라는 서서히 냉정한 판단력과 배려심을 가지고 쉴라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쉴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아파도 울지 않으며, 항시 분노에 찬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모습에서 서서히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사랑의 눈으로 변해갔다. 더불어 토리 선생님은 쉴라가 180 이상의 지능지수를 가진 천재라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쉴라가 처음 토리 선생님에게 왔을 때 정신과 의사가 적어준 소견서에는 ‘아동기의 만성 부적응증’ 이라는 한 줄의 문장만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 토리 선생님은, 쉴라와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만성 부적응이 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여섯 살 어린 여자 아이가 그러한 환경에 잘 적응해서 사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토리 선생님은 특수반의 아이들이 보통의 아이들처럼 일반적인 오락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그냥 적당히 큰 문제 없이 하루를 보내면 다 된 것이라는 기존의 분위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것은 단지 하루하루 지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쉴라는 아버지에게 들었다며 자신이 속한 반은 미친 아이들만 있는 미친 반이고, 그 반에서 가르치는 토리 선생님도 미쳤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토리 선생님은 미쳤다는 건 나쁜 게 아닌 그저 다른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하고, 차분하게 웃으며 쉴라의 반응 그대로를 인정하고 기다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쉴라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노력한다.

 

그리고 <어린 왕자> 책을 보고 나서, 쉴라는 길들임의 의미, 다양한 눈물의 의미, 아픔의 의미 등을 깨닫게 된다. 쉴라는 운다는 것이 단지 누군가에게 맞았을 때에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리고 토리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누군가를 길들이고 사랑하게 됐을 때에도 울 수 있고, 그러한 존재와 헤어질 때 마음이 아플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체험하고,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법을 익혀가게 된다.

 

이처럼 토리 선생님은, 쉴라의 감당하기 힘든 행동들에 대해, 그 아이의 문제를 고쳐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본인 스스로가 먼저 다른 사람들을 버리려는 슬픔의 마음이라는 것을 갈게 된다. 또한 영어 표현에서 be 동사를 시제에 맞지 않게 과거가 아닌 현재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여기는 현재 속에 담으려는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한 아이와 한 선생님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나 벽을 제거하고 사랑과 믿음의 소통을 하게 된다. 그리고 토리 선생님은 말한다. 비정상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나아가 그것은 그 한 사람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이다. 토리는 나중에 선생님께 바치는 시에서 토리 선생님은 자신의 눈물이 모두 기쁨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려주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3. 감상 및 맺음말

이 책을 보고 감동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울림이 큰 책이다. 하지만 울림이 크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하기에 감동적이고 울림이 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특별한 토리 선생님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고, 변화가 가능했던 쉴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함은 일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쉴라처럼 극단적인 특수성을 가진 아이가 아닌 애매한 구간에 있는 아이들의 문제이다. 보통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하고, 특수반이라 칭해지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 모아두는 반으로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사실 싫어하기 이전에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단적 폭력성을 보이지만 않는다면, 다른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괴롭히고 수시로 수업 진행을 방해해도 보통의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쉴라와 같은 아이보다 이렇게 애매한 구간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는 게 더 일상적이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생님들이 그 아이 한 명에게만 토리 선생님처럼 온전히 기다리고 배려하면서 집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애매한 구간에 있는 아이들이 조금씩 극단적으로 변화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쉴라와 같은 극단적 사례를 연구한 뒤에는, 그러한 극단적 상황까지 가기 전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장난이 과하고 폭력적 성향이 드러나며 수업 진행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아이들에 대한 추가적 관심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분류되는 것에 대해 부모들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모든 아이들의 쉴라처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기다림과 배려로 대하기만 하면 변할 수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는 것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폭력적 성향이나 자폐적 특성 등이 긴 스펙트럼의 연속선 상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특성도 다채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당연히 이 아이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접근해야 하겠지만, 무한정 그 아이의 변화만을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는 없다. 특히 특수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인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런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시점까지 한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좋은 선생님 이전에 좋은 부모가 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가정에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장한 아이들이 결국,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문제가 있는 행동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1차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따라서 특수한 아이들에 대한 재교육은, 그 부모에 대한 재교육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부모만큼 오래 자식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부모 만큼 무한정 자식을 위해 기다리고 배려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그 선생님에게 부모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외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큰 문제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쉴라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그 아버지도 쉴라 만큼 격리와 재교육이 필요하다.

 

예전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큰 감동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영화가 나온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교육계는 변화한 게 그다지 없다. 여전히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워주고 꿈을 찾도록 교육을 시키기보다 입시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도 큰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지만 역시나 이 책의 감동이 현실로 크게 확장될 수 있을까에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이 책의 감동을 저해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들을 적어 보았다. 다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토리 선생님과 같은 분이 소수이고, 향후에도 일상적으로 우리 주변에 그런 선생님들을 많이 볼 수 없을 것임을 알지만, 그런 선생님들이 소수라도 있기에 감동은 이어지고 또 다른 그러한 선생님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또 다른 토리 선생님의 탄생을 위한 작은 씨앗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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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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