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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0XuuNRTdp8

 

빠름과 느림, 직관과 이성의 조화

- 타격기와 유술기, 세나와 슈마허 -

 

무술은 그 특성에 근거하여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타격기이고 두 번째는 유술기입니다. 타격기는 복싱, 무에타이, 태권도, 절권도 같은 무술이 해당하고, 유술기는 유도, 주짓수, 씨름, 레승링 같은 무술이 해당합니다. 둘다 어떤 기술이 시전될 때에는 빠른 속도로 기술이 들어갑니다. 다만 과정의 속도에 있어서는 타격기가 빠르고 유술기는 느립니다. 그래서 타격기가 순간적인 직관에 좀더 특화되어 있다면, 유술기는 방어하면서 서서히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 들어가기 때문에 이성에 좀더 특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타격기든 유술기든 모두 직관과 이성이 혼재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절대적 구분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성향과 신체적 특성에 근거하여 본인의 특성에 맞는 무술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부류의 무술이 절대적으로 무조건 강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더불어 빠름 속에 느림이 있고, 느림 속에 빠름이 있을 때 타격기든 유술기든 그 강점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타격기는 무조건 빠르고 강하며, 유술기는 무조건 느리고 부드럽기만 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타격기에서 본 공격이 제대로 먹히기 위해서는 페인팅 동작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본 공격이 빠름이라면 페인팅 동작은 그에 앞선 한 템포 속도를 줄이고 상대방의 타이밍을 뺏는 느림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유술기도 방어를 통해 상대방의 기운을 빼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버티는 것은 느림이지만, 마지막 상대방을 제압하는 기술의 시전은 빠름이 됩니다.

 

 

그런데 격투 대회의 초창기에는 타격기 선수들이 우위에 있었고, 키가 크고 몸무게가 무거운 상위 체급의 선수를 낮은 체급의 선수가 이기는 것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60센티미터의 키에 55에서 60키로그램 사이의 몸무게를 지닌 브라질의 엘리오 그레이시가 유도를 근간으로 한 실전 주짓수를 창안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지않으면 결국이기게 될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하기도 한 엘리오 그레이시는 10만불을 걸고 자신의 도장에 무술인들을 초청하여 대련을 함으로써, 자신이 창안한 주짓수 기술이 체급의 한계와 기존의 유술기의 한계를 충분히 극복하고 실전에 사용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호리온 그레이시가 UFC를 창단하고 호리온 그레이시의 동생인 호이스 그레이시가 그 대회에 출전하여 3회 우승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초창기 UFC 대회는 룰도 없고 체급 구분도 없는 대회였습니다. 즉, 호이스 그레이시는 자신보다 키도 더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는 많은 타격기 선수들과 기존의 유술기 선수들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진정한 무술 고수라면 타격기와 유술기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특화시키기보다 두 가지 모두를 익히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적절히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됐습니다.

 

 

한편 무술 대회 이상으로 더 극적이고 목숨을 건 대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카레이싱입니다. 카레이싱 선수들도 무술인들 만큼 직관과 이성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라이벌 관계였던 카레이싱 선수들의 특성을 보면 직관과 이성 중 한 가지에 좀 더 특출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초창기 라이벌 관계 중 유명한 두 사람은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헌트가 직관적 특성이 강하여 공격적 레이싱을 펼쳤던 것에 반해, 니키 라우다는 이성적 특성이 강하여 분석가 스타일로 레이싱을 펼쳤습니다. 그 다음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두 사람은 아이르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입니다. 아이르톤 세나는 제임스 헌트처럼 직관적 특성이 강하여 공격적 레이싱을 펼쳤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유명한 말은 “틈새가 있을 때 파고들지 않는다면, 더 이상 레이싱 드라이버가 아닙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틈새를 파악하고 빠르게 그 틈새를 치고 들어가서 추월하는 능력은 직관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알랭 프로스트는 ‘서킷 위의 교수’ 라는 평가를 받는 것처럼 니키 라우다와 같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분석가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술 대회도 그렇고 레이싱 대회도 그렇고 보통은 직관적 특성이 강하고 빠르게 틈새를 파고들어 적을 쓰러뜨리거나 추월해서 우승하는 사람이 보통은 더 우수해 보이고 높은 인기를 얻는 게 일반적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UFC에서도 이제는 타격기와 유술기를 복합적으로 거의 모든 선수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보통 타격기 베이스의 선수들이 더 인기를 얻고 있고, 레이싱에서도 직관적 스타일의 제임스 헌트나 아이르톤 세나 같은 유형의 선수들이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카레이싱에서도 타격기와 유술기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직관과 이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그 이상을 아우르면서 최고의 레이서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익히 잘 알려진 미하엘 슈마허입니다. 슈마허는 경쟁 드라이버들의 주행과 전광판에 뜨는 랩 타임 기록을 동시에 보는 엄청난 동체 시력으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레이싱 전체를 분석하는 이성적 능력도 가지고 있고, 나아가 기술적 자질도 뛰어나서 레이싱의 뒤를 받쳐주는 기술팀 사람들과의 소통도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가로 자신의 레이싱 동료들 뿐만 아니라 기술팀 등 레이싱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을 조화롭게 이끄는 리더십으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레이서들 사이에서 최고의 레이서로는 아이르톤 세나가 꼽히고 실제로 아이르톤 세나를 롤 모델로 하여 레이싱에 입문하는 선수들도 많다고 하지만, 전체 결과만을 놓고 볼 때는 슈마허의 결과가 더 좋습니다. 참고로 포스트 슈마허 시대를 이끈 또 다른 두 라이벌 중 루이스 해밀턴은 세나의 엄청난 팬이면서 그를 롤 모델로 레이싱에 입문했고, 제바스티안 페텔은 슈마허의 계승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빠름과 느림, 직관과 이성은 단지 스포츠 선수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각종 전쟁이나 사업 등에서 위대한 결과를 남긴 사람들을 보면, 빠름과 느림, 직관과 이성을 적절히 잘 사용했습니다. 역으로 실패한 사람들은 직관과 이성을 사용함에 있어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거나 거꾸로 사용했습니다. 더불어 직관적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그의 성과가 타고난 재능에 의한 것으로 폄하되기도 하는데, 실제 그들의 삶을 보면 엄청난 노력과 연습량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보통 직관적 능력에 특화된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짧은 시간에 강하게 몰입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이성적 능력에 특화된 사람들에 비해 단명하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칼은 빨리 부러질 수 있다.’ 라는 말도 그러한 연유로 나온 말입니다. 따라서 불꽃처럼 빠르게 타오르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날지, 아니면 상황을 관망하면서 최대한 마지막 결정적 기회를 기다리면서 길게 살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두 가지를 조화롭게 운용하는 것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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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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