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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99zTEMv-l54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처능력은 승패를 좌우합니다. 빠름과 느림, 또는 나아감과 물러남에 있어 한 가지만 잘 해도 위대해질 수 있고, 둘다 잘 하면 탁월한 고수가 되며, 두 가지를 두서없이 사용하게 되면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고려 인종 때 승려 묘청은 초반에 도참설을 근거로 인종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개경에서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자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자 과거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인종은 묘청의 생각과 주장을 서서히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그의 본심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묘청은 불안한 마음에 먼저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묘청의 반란을 진압하는 대장군은 김부식이 선정됩니다. 그런데 반란이 일어난 급박한 상황에서 김부식의 행군은 느리기만 했습니다. 김부식의 생각은 묘청 세력의 반란 준비가 기본 5년 이상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빠르게 공격하면 오히려 복병의 기습을 당하거나 성 앞에 이르러도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며 서경의 주변 성들의 군사가 호응하면 포위까지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외적과의 전쟁이 아닌 같은 고려 군사들끼리의 전쟁인 만큼 굳이 대규모의 접전을 벌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필요 이상으로 병사들을 소모할 건 없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부식은 서경의 반란에 호응할 수 있는 주변 성들로 사람을 보내 그들이 반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설득하였고, 그렇게 주변의 성들을 안정시킨 후 서경에 이르렀고, 서경에 이른 뒤에도 바로 공격하지 않고 또 다시 서경 안의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심리적 압박과 적절한 설득으로 반란군을 이끌고 있던 조광 장군의 마음을 돌려세웠고 반란의 중심이었던 묘청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의 목을 베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묘청의 난은 큰 군사적 소모 없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묘청의 죽음으로 묘청의 난은 끝났지만 남은 반란 세력에 대한 김부식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개경 세력이 강경책을 밀고가자 조광을 중심으로 한 서경의 반란은 이어지게 됩니다. 이에 김부식은 역시나 성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에 인종을 비롯한 개경의 신하들과 김부식 밑에 있는 장군들까지 빠른 진압을 하도록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김부식은 인종을 설득함과 동시에 최대한 적의 예봉을 꺾을 때까지 기다렸고, 성 주변으로 더 높게 토성을 쌓으면서 압박하다가, 적의 기세가 약해진 것을 틈타 야밤에 한 번의 전면적 공격으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곧이어 바로 항복하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과 백성들을 약탈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안정을 도모합니다. 김부식의 지구전이 무조건 맞는 전술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김부식의 성향과 능력에서 최대한으로 잘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란의 혼돈과 두려움을 잠재우고 빠른 안정과 결과를 원하는 왕과 신하들, 그리고 본인 주변의 장군들의 압박을 견디고 뚝심있게 자신의 주관을 밀고나갈 수 있는 것도 큰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선조의 공격 명령과 자신의 오판으로 무모하게 돌진했던 원균이 패했던 것과 비교되며, 2차 세계대전 때 승리에 목말라 있던 처칠을 비롯한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이 승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보급을 확보하기 위해 기다렸다가 결국 승리로 이끈 몽고메리 장군과 비교되며, 국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포위전략으로 프랑스 군과 미군을 몰아낸 보응우옌잡 장군과도 비교가 됩니다.

 

한편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전술적 움직임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삼국지에 나오는 사마의입니다. 관우가 형주에서 패배하자 상용을 지키던 맹달은 촉나라를 버리고 위나라 조비에게로 넘어가고, 그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위나라에서 조비가 죽고 조예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맹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자 제갈량은 맹달을 회유하여 다시 촉나라로 넘어오도록 설득합니다. 이에 맹달의 반란 조짐을 눈치 챈 사마의는 맹달에게 서신을 보내 심리적으로 안심을 시킵니다. 그 시기에 사마의는 상용에서 300키로미터 떨어진 완성에 있었고, 완성에서 황제에게 반란에 대한 보고와 진압 허락을 받으려면 한 달 가량이 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의의 서신을 받은 맹달도 이러한 사정을 눈치채고 빠르게 방비를 하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마의는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고 300키로미터의 거리를 8일만에 주파하여 맹달을 죽이고 상용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마의는 맹달의 반란 조짐을 보고, 그것이 단순히 맹달만의 생각이 아닌 제갈량이 뒤에 있음을 눈치챘습니다. 맹달이라는 장수보다 상용이라는 지역이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제갈량은 형주에서 낙양을 공격하고, 익주에서 장안을 공격하는 양방향 루트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관우가 형주를 잃으면서 그 계획이 틀어졌고,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상용 지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용은 형주의 서북쪽에 위치하여 촉에서 상용으로 나가면 형주에서만큼 수월하지 않지만, 완성을 지나 낙양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마의가 상용의 반란을 진압하고 재탈환하면서 결국 제갈량은 익주에서 장안을 거쳐 낙양으로 가는 한 방향의 길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더불어 사마의는 상용 반란 진압 때 완성에서 상용까지 빠르게 질주하는 전술을 택했지만, 나중에 제갈량의 북벌을 방어할 때에는 여자 옷을 보내는 제갈량의 조롱에도 반응하지 않으면서 꿋꿋하게 성을 지키는 지구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만의 강점이 있고, 각자만의 움직임의 반응과 타이밍이 있습니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빠름과 느림을 다채롭고 유연하게 사용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잘 이해하고 무언가 반대의 능력이 떨어질 때에는 하나에 집중함이 더 좋을 것입니다. 우직하다 싶게 충분한 보급을 확보하여 승리한 몽고메리 장군도 본인의 완벽주의 성향에 잘 맞지 않는 마켓 가든 작전이라는 기습 작전을 주도했다가 크게 실패했던 전력이 있었음을 볼 때, 역시나 적을 아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게 우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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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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