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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KoAd8RjMVg

 

 

예언과 집착

- 마리우스와 마르타 -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로마 속주 반란의 진압과 게르만족의 침입을 격퇴하면서, 초기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켈트족을 격퇴하고 로마를 지킨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를 이어 로마의 제 3의 건국자로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첫째 고모부이기도 하고, 카이사르의 둘째 고모부였던 술라의 상관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우스는 로마 제 3의 건국자로 불리기는 했지만 공화정 몰락의 서막을 열었고, 외세의 침입과 속주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예외적 혜택을 받으면서 최고의 권력을 위임받고 일곱 번이나 집정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 로마의 혼돈과 내전의 비극은 술라와 카이사르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옥타비아누스에 이르러 정리가 되면서 결국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황제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로마에서 집정관은 두 번 연임하기도 힘든 최고의 위치였기에 마리우스가 일곱 번 집정관을 한 것은 어차피 황제 아닌 황제로 군림했던 옥타비아누스를 제외하고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일곱 번 집정관을 역임한 뒤의 결과는 영광이 아니라 비극이었습니다. 그렇게 비극으로 끝날 결과에 마리우스가 그렇게 집착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 설은 마이크 덩컨이 지은 ‘폭풍 전의 폭풍’ 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마리우스가 어린 시절 나무에서 독수리 둥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망토로 그 둥지를 감싸서 들었는데 그 안에 새끼 독수리 일곱 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독수리는 알을 두 개 이상 낳지 않았기 때문에, 일곱 마리의 새끼 독수리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우스의 부모는 이 새끼들을 들고 동네 점쟁이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점쟁이는 크게 놀라면서 마리우스가 일곱 번에 걸쳐 최고의 권력을 얻게 될 운명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렇게 마리우스의 마음에는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하기 어려울 집정관을 일곱 번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설은 콜린 매컬로가 지은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중 ‘로마의 일인자’ 라는 책에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마리우스가 아프리카 속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그 당시 집정관이었던 메텔루스의 부관으로 파견이 되는데, 거기서 시리아 출신의 ‘마르타’ 라는 무녀를 만나게 됩니다. 마르타는 마리우스에게 “당신은 총 일곱 번 집정관이 되고, 사람들은 당신을 로마 제 3의 건국자로 부를 거요. 당신은 로마를 사상 최대의 위기에서 구해낼 것이니까.” 라고 예언합니다. 그 당시 마리우스는 한 번도 집정관에 오른 적이 없을 때였습니다. 다만 많은 조건들이 집정관에 오를 수 있게 맞춰지고 있기는 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마르타의 예언은 마리우스가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큰 동기 부여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리우스는 그 당시 전통적인 귀족 가문인 파트리키 계급이 집정관을 독식하던 시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정관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돈이었습니다. 즉, 파트리키 계급이면서 돈이 많아야 집정관이 될 수 있었고, 둘 중 하나만 가지고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집정관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한편 평민 출신이었던 마리우스는 평민들의 대표인 호민관을 거쳐 원로원에 입성하고 법무관이 되어 히스파니아 속주의 광산 개발과 함께 큰 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의 평민 계급이 발목을 잡고 있던 상황이었고, 사실 이미 법무관까지 오른 것도 기적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이미 권력욕은 있었던 마리우스에게는 법무관으로 인생을 마감하기는 아쉬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할아버지가 마리우스에게 접근합니다. 율리우스 가문은 파트리키 계급이었지만 몰락해 가는 귀족 가문이어서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들을 집정관으로 만들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카이사르의 할아버지는 돈이 많고 군인으로서 자질도 뛰어나며 권력욕이 있는 마리우스를 사위로 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마리우스는 파트리키 계급이었던 율리우스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게 되면서 집정관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맞춥니다. 더불어 율리우스 가문 사람도 마리우스의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결국 나중에 집정관에 오르게 됩니다. 다만 카이사르의 큰아버지였던 섹스투스는 집정관이 되지만 카이사르의 아버지는 집정관이 될 수 있는 시기의 전 단계에 죽으면서 아쉽게 집정관을 하진 못했습니다.

 

한편 마리우스는 율리우스 가문과 결혼 후 위에 언급한 아프리카 속주에 부관 자격으로 갔다가 마르타를 만나고 그 뒤로 신기하게도 계속 집정관이 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집정관이 되고 두 번째 집정관이 되고 계속 그 과정이 이어지면서 마리우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일곱 번 집정관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게 결코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우스가 그렇게 연이어 집정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속주의 반란이나 게르만 족의 침입 등 그의 군사적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상황들이 이어졌기 때문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군사적 역량에 비해 정치적 역량은 약했고, 결국 사투르니누스라는 호민관에 의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과 더불어 제대로 상황 수습을 하지 못하면서 여섯 번째 집정관을 끝으로 서서히 저무는 해가 됩니다. 그 다음에서 로마의 동맹시들이 반란을 일으킨 동맹시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잠시 군무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다시 지휘권을 반납하고 일개 시민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마리우스는 일곱 번 집정관을 한다는 예언을 완성하지는 못해도 영광스럽게 생을 마감하고 술라에게 자연스러운 권력의 이양이 됐을 것이며 로마 내전을 통한 수많은 죽음의 비극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기어코 일곱 번째 집정관에 오르겠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다시 로마의 집정관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군사적 성과를 통한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동방의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가 로마에 반기를 드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진압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압군의 지휘권은 그 당시 집정관이었던 술라에게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만약 자신이 술라의 지휘권을 빼앗고 폰투스 왕국을 진압하고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일곱 번째 집정관에 오르고 예언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부관이었지만 아프리카 속주 진압 이후 감정적으로 틀어졌던 술라가 자신의 영광을 넘어서는 업적을 이루어가는 게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리우스는 그 당시 시민권자들의 투표권 배분 문제로 궁지에 몰려있던 호민관 루푸스와 연합하여 술라의 동방원정 지휘권을 빼앗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군사 편성을 마치고 동방 원정을 떠날 준비가 끝난 술라는 이에 반발하고 결국 로마 내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복잡하게 진행되던 내전의 와중에 마리우스는 정식 절차를 밟지도 않고 결국 일곱 번째 집정관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일곱 번 집정관을 한다는 예언의 완성과 더불어 본인과 본인 가족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마리우스는 일곱 번째 집정관이 된 후 보름 뒤에 죽었고, 추후 술라의 세력에 의해 그의 시체는 테베레 강에 버려지게 됩니다. 또한 끝까지 술라에 대항해 싸운 마리우스의 아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고모이자 마리우스의 아내였던 율리아는 살아남기는 했지만 자식과 남편을 앞서 보낸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확실성과 정답을 원하지만 결코 정해진 미래는 없으며 알 수도 없습니다. 기존의 흐름과 성향을 미루어 짐작하고 추정할 뿐입니다. 따라서 어떤 판단에 있어 그 기준이 되는 것의 우선 순위가 결코 예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언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순리이고 상식입니다. 기존의 예언들이 아무리 잘 맞았다고 해도 다음 예언에서 순리와 상식에 어긋난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예언에 대한 확신은 자신의 욕망과 더불어 증폭되고 때로는 광기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특정한 예언은 그 다음의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고 그 주변으로 펼쳐질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존의 예언이 잘 맞았다고 해도, 항시 그 다음 선택에서는 역시나 순리와 상식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설령 예언의 완성은 이루지 못할지언정 조화로움과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주권자는 예언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고, 인생의 주도권은 어떤 예언자의 말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누군가 예언한 운명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순리적이고 상식적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특권이기도 하고, 그게 바로 진정으로 의미있는 자기만의 예언을 만들고 완성해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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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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