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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8IUbV02krY

 

 

사랑은 완전한 합체가 아니라 적정한 거리감이다.

- 칼릴 지브란, 쇼펜하우어, 그리고 커트 러셀과 골디 혼 -

 

쇼펜하우어에 대해 일부에서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을 파헤침으로써 철저히 행복을 추구한 철학자라고 말합니다. 두 부류의 극단적 평가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두 부류의 평가 모두가 맞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열정과 충동성이 강한 20대의 젊은 시절에는 너무 차분하게 인생의 실체를 보여주는 글 속에서 허무적이고 염세적 느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뜨거움이 서서히 식고 삶의 경험이 쌓인 40대가 되면 쇼펜하우어의 관조적 분석 속에서 행복의 현실적 의미를 찾고 공감하게 됩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에는 고슴도치에 관한 우화가 나옵니다. 쇼펜하우어가 소개한 이 고슴도치 우화는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심리학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우화의 내용을 보면,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달래고 온기를 나누기 위해 서로 가까이 붙습니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 붙자 자신들의 날카로운 가시가 서로를 찌르면서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가 떨어지게 되는데, 떨어지면 또 추워지기 때문에 다시 붙어서 서로 상처입히고,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적당히 온기도 나누면서 자신의 가시로 서로를 찔러 상처입히지 않는 균형있는 거리감을 찾게 됩니다. 이 고슴도치 우화의 내용처럼 사랑의 관계도 적정한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라 하지만 또 너무 가깝게 붙으면 서로를 상처입히게 되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사랑의 온기를 나눌 수 없어 차갑게 식어버리게 됩니다. 다만 고슴도치의 우화처럼 사랑의 적정한 거리감을 찾기 위해서는 앞서 가까이 붙어 서로를 상처입히거나 멀리 떨어져 사랑의 온기가 식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관계에서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거리감의 정확한 비율을 인식할 수 있다면 애초에 사람들은 사랑이나 관계에서의 고민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계의 거리감에 관하여 이야기한 사람은 쇼펜하우어만은 아닙니다. 레바논 출신의 시인이자 화가이면서 철학자였던 칼릴 지브란도 그의 책 <예언자>에서 유사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에 대하여’ 라는 시에서는 ‘사랑은 소유하지 않고, 소유당하지 않는 것이니,’ 라는 구절도 있고, ‘결혼에 대하여’ 라는 시에서는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천상의 바람이 너희 둘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라는 구절도 있으며, ‘너희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파도를 두라.’ 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이러한 구절의 내용은 상처받고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백 프로 공감할 수 없고, 젊어서 열정적 사랑에 빠져 있거나 그러한 사랑만을 동경한다면 너무 이론적이고 기계적이며 메마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이미 경험하고 상처받아서 어떤 관계의 거리감을 찾는 시도 자체가 더 이상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사랑의 관계를 다시 시도하든 안 하든 각자의 사람은 독립된 개체이고 각각의 나름에서 소중한 존재이며 고독하게 태어나 고독하게 가는 것이라는 인식은, 그 자체로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 중에 커트 러셀과 골디 혼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느 결혼한 부부처럼 슬하에 한 명의 자녀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각각 예전에 실제 결혼을 한 뒤 이혼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도적 결혼의 속박과 그로 인한 이혼의 과정이 얼마나 추악하고 서로를 더욱 싫어지게 만들며 자녀들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관계는 궁극적으로는, 독립적 사고로 독립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뜨겁게 사랑한다고 하여 결혼하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혼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관계와 이 두 커플처럼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랑을 유지하는 관계 중에서 뭐가 더 이상적인 관계인지는 누구나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결혼의 서약이 중요한 게 아니고, 결혼의 서약에 따른 서로의 속박이 중요한 게 아닐 것입니다. 서로의 독립적 존재를 존중하고 굳이 외부에 보여지는 제도적 결혼의 틀에 얽매이지 않을 때, 서로의 자유 영역도 넓어지면서 그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꽃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자녀 또한 자신의 부모가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에 묶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결혼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관계의 울타리 안에 억지로 가두려는 사회적 관습도 서로간의 적정한 거리감을 찾는 데에 큰 방해 요소인 것 같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생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결혼의 제도적 틀에 묶여야 한다는 당위성 이전에 서로에 대한 독립된 개체로의 존중과 관계에서의 거리감에 대한 필요성을 먼저 사람들이나 우리의 자녀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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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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