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https://youtu.be/EeGz491hnFM

 

 

전쟁은 빠르고 집중적으로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혁신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앞선 전쟁에서의 문제점은 그 다음 전쟁에서의 혁신을 가속화 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 앞서 1차 세계대전에서의 문제점은 ‘서부전선 이상없다.’ 라는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14년 10월에 전쟁 발발 직후 서부전선의 전투 양상은 참호전으로 굳어졌다. 1918년 종전 무렵 전선의 이동은 거의 없었다. 이곳에서 300만명이 넘는 병사가 사망했으며 대개는 고작 몇 백미터 땅을 차지하려는 전투에서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대략 17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 경험을 통해 얻은 안목

구데리안은 1차 세계 대전 때 통신장교로 임관한 후, 참모장교로 진급합니다. 이때 전쟁에서 통신과 소통의 중요성, 전쟁 상황을 넓게 보는 법, 첨단 무기의 힘 등을 깨닫게 됩니다. 더불어 참모장교 시절 돌격대의 중요성과 문제점을 보면서, 향후 전격전의 모티브를 얻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2년 구데리안은 베를린에 위치한 군의 차량 및 철도 수송과 보급을 설계하고 감독하는 교통 병감부에 배치되는데, 그곳에서 오스발트 루츠라는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기갑 병기가 미래의 전쟁의 중심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루츠의 도움으로 전쟁사, 1차 세계대전에서의 참호전, 다른 선진국들의 기동전 등에 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게 됩니다.

 

 

2. 넓은 안목을 통해 얻은 확신

기갑 부대를 근간으로 한 기동전에 대해 갈수록 확신이 들어갈 무렵, 그는 차량 수송 대대의 지휘관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수송대의 주 업무인 병력 이동과 보급품 수송에 대한 훈련이 아니라 기갑 부대의 기동전투 훈련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다만 실제 기갑 부대의 장비가 주어진 것도 아니고 기갑 부대가 창설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수송차량에 마분지를 덮은 모형 전차로 훈련을 합니다. 다행히 그의 부대원들은 그런 조잡한 모형으로 하는 훈련임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임했다고 합니다. 물론 윗사람들의 반대 때문에 몰래 훈련해야 했고, 일반 보병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마분지에 구멍을 뚫고 돌을 던져대는 수모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1931년에 루츠 소장이 차량수송부대 총감의 자리에 오르면서, 구데리안을 참모장으로 임명하고 기갑부대의 창설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하여 독일은 전차의 개발과 배치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츠와 구데리안은 주변국 몰래 소련의 카잔에서 전차 전술을 연구하게 되고, 구데리안이 대령으로 승진하면서 그가 고안한 전차를 바탕으로 한 기갑 전술을 주창하게 됩니다.

 

 

3. 확신의 확장을 위한 분석

그의 확신이 확장된 데에는 과거의 전술과 현재 주변국들의 장비에 대한 분석이 있었습니다. 그가 분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는 20년대의 각국 전차들을 탑승하고 분석해본 뒤, 당시의 어떤 전차도 전차장에 적합한 환경은 제공되지 않음을 발견하였고, 전차끼리의 통신도 미흡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다음 나폴레옹 군대의 기동전술 분석하여 신속한 공격도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후속 부대의 속도와 역할도 중요함을 발견했습니다.

- 다음 1차 대전 때, 후티어 전술로 탄생한 독일 돌격대는 너무 느린 단점이 있음을 발견했지만, 은밀한 기습을 했을 때에는 성공적으로 참호를 점령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후속부대의 이동속도가 너무 느려 혼란에 빠진 적이 먼저 전선을 수습하여, 다시 참호에서 밀려난 사실에 주목합니다.

- 다음 1차 대전 말기에 영국군의 Mk전차와 프랑스의 르노 FT전차가 독일군에 가져온 쇼크와 한계를 분석했습니다. 다만 구데리안이 발견한 건, 영국이나 프랑스의 전차 운용 전술이, 전차가 중심이 아니라 보병을 보호하고 정면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차의 방어력과 화력은 좋은 대신 기동력과 유연성이 떨어짐을 파악했습니다.

- 다음 근대 기갑전의 교리를 제공한 영국의 J.F.C. 퓰러가 PLAN 1919라는 명칭으로 1차 세계대전 말기에 고안했지만 독일이 1918년 항복하면서 사용하지 못했던, 전차 기동 전술의 장점을 차용합니다. 이는 장거리를 신속히 이동하고 적의 지휘부를 파괴하는 전술이었습니다.

 

 

4. 전술의 혁신

그간의 경험과 연습, 분석 등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은 전술 목표를 정리합니다.

 

- 먼저 가장 큰 전제는 신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다음 전차로 전선의 약한 지점을 빠른 기습으로 격파 및 돌파하고, 이 돌파 지점에 대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장갑차, 자동차, 오토바이 등의 모든 가용할 수 있는 동력 장비로 최대한의 후속부대를 이동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느린 대규모의 보병 사단이 그곳을 점령하고 이 순서를 반복하는 것이 그의 핵심 전술 목표입니다.

- 다음 그의 전술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유연함입니다. 빠르게 이동하며 군사 작전을 펼칠 경우, 군의 사령부로부터 일일이 명령을 받고 보고를 하면 신속함과 정확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일선 지휘관이 상황에 맞게 바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에 구데리안은 최전선의 전차가 움직이는 작은 사령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위와 같은 큰 틀의 전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데리안은 다음과 같은 세부 조건을 정리합니다.

 

- 먼저 모든 전차는 충분한 기동력을 확보해야 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차장이 탑승해야 하며, 전차장은 지휘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다음 기존 전차와 달리 전차 승무원들이 전차 안에서 빠르게 주변 상황을 관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다음 속도가 느린 전통적인 포병대의 규모를 줄이고, 대신 빠르게 움직이는 전차의 기동력에 맞춰 포격 지원을 해 줄 공군 전술 폭격기의 역할을 늘려야 합니다.

- 다음 전차 부대는 그 화력과 속도의 장점을 이용한 기습과 적에 대한 충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보병부대가 아닌 전차부대로 따로 독립 편성해야 합니다.

- 다음 전차 부대의 속도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후속 보병부대의 자동차화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 다음 보병부대가 전차 부대와 긴밀히 연계할 수 있도록 같은 사단의 휘하에 두어야 합니다. 이는 결국 기존의 보병부대 중심이 아닌, 전차부대 중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 다음 전차부대가 앞서 돌파하고 진군하기 때문에, 보병부대와는 별개로 전차부대끼리만의 무선 통신과 협동 훈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여기에 더하여 전차 내부적으로는 전차장의 시야 확보를 위해 그 위치를 포탑 포수 뒤로 하고, 전용 큐폴라를 설치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 또한 전차끼리의 소통을 위한 무선 장비 장착과 전차 내부의 승무원들끼리의 소통을 위한 헤드폰과 인터컴 설치의 필요를 말합니다. 그리고 전차 포탑은 원활한 참호 공략을 위해 보병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하며, 우수한 광학 조준기 설치로 조준의 정확도를 높여야 함을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동력을 최대로 확보하면서도 기본 방어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교량을 통과할 정도의 무게에 맞춰야 함을 강조합니다.

 

 

5. 혁신이 현실이 되는 것에 대한 저항

보수 집단과 기존의 병과는 구데리안의 혁신안에 대해 강력한 저항을 했습니다.

 

먼저 보수집단은 나치 독일 이전부터 군 세력의 중심이었던 프로이센 엘리트 장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크고 느린 영국의 Mk 전차나 비커스 같은 가볍고 약한 탱캣들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 새로운 전술에서 자신들이 차지할 입지가 약해질 것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또한 기존 병과에서는 보병 장교들 중심으로 자신들이 전술의 중심이 아니라 보조 역할이 되어야 하는 것에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기병 장교들은 수송부대에서 시작한 기갑사단이 전차 운용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더불어 포병장교들은 이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나아가 가장 큰 반대 집단은 원로 고위 장교들이었는데, 구데리안 전술의 주요 내용이 지휘 사령부를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보적 장교들 조차, 자신들이 유학했던 곳을 중심으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쪽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곳의 전차 전술이 맞다고 생각했고, 구데리안처럼 소련에서 유학하고 배웠던 사람은 구데리안의 이론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6. 혁신이 현실이 되기 위한 지지

혁신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최종적으로 힘있는 사람이나 세력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구데리안 혁신안의 최고 후원자는 바로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가 그의 의견을 지지한 이유는, 귀족 집단처럼 형성된 프로이센 원로 군인들을 견제하기 위함이 컸습니다. 더불어 히틀러 본인도 1차 세계대전을 참전했었고, 참호전의 허망함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구데리안의 혁신안이 막막할 수 있는 참호전을 타개할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1933년 히틀러는 구데리안의 스승격인 루츠 장군에게 기갑사단 창설과 전차 개발을 명령했고, 향후 3개의 기갑사단이 창설되는데 구데리안은 제2기갑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루츠 장군과 구데리안은 현실적으로 빨리 양산할 수 있는 전차, 그가 본래 구상한 주력전차, 이동 포병 전차의 개발을 진행하고, 기갑사단의 편성, 교리, 보급 방법, 훈련 방법 등 기갑 사단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정립합니다.

 

 

7. 혁신에 대한 증명

히틀러와 구데리안은 기존 반대 세력에 대해 그들의 전술이 우수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병합되고 그에 대한 기념 행사때, 구데리안에게 독일의 기갑사단을 이끌고 오스트리아의 빈에 입성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구데리안은 수 백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보유한 사단규모 이상의 부대를 빠른 속도로 천 키로 가까운 거리를 성공적으로 이동시키면서, 전차는 무겁고 느리기만 해서 기동 전술에는 효용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본격전 전쟁에 임하여,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소련 침공 등에서 ‘전격전’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합니다.

 

 

8. 구데리안 혁신의 성공에 기여한 숨은 경쟁자

구데리안은 돌파 후의 기갑부대가 추진력을 잃지않고 전진해서 전략 목표 선취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전통적으로 적의 방어선을 무너트리더라도 전선에 전개된 적의 야전군을 포위섬멸해야만 했고, 그러한 전통적 방식을 제외하고도 구데리안이 혼자 앞서가버린 뒤 그에 따른 뒤치다꺼리와 보급 이동, 적의 지원군 방어 등을 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혼자 앞서간 구데리안의 기갑사단은 홀로 고립되거나 적에게 포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후속 지원을 잘 수행하여 전격전 전술이 완전하게 성공할 수 있게 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로 귄터 폰 클루게 장군입니다. 귄터 폰 클루게는 축구로 치면 미드필더와 같은 역할이 됩니다. 보통 축구에서도 미드필더보다 공격수가 더욱 임팩트가 있고 오래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것처럼, 공격수 같은 구데리안의 명성이 워낙 높아서 클루게 장군은 뒤로 밀려난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클루게 장군의 판단이 틀렸던 적도 있고, 오해가 생긴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혁신이 최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앞서가 버리는 혁신에 대해 그 중간을 채워주고 보좌해 줄 기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또한 혁신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술적 혁신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치열한 열정과 노력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고, 기술적 혁신이 따라와야 하며, 타이밍의 적절성, 정치적 지지, 기존에 쌓인 자료, 실패의 노하우, 반대 세력의 저항에 대한 합리적 극복, 혁신의 현실화 이후의 각종 후속 조치 등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의 전술적 혁신이 현실로 구현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777lili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