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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1988년 초판 출간 이후 스테디셀러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절판 이후 새 얼굴로 출간됐다. ‘전면개정’이라는 수식이 무색할 정도로 30년 넘게 축적된 정보를 꼼꼼하게 보완하고, 사건에 대한 해석을 바꿨으며, 같은 문장 하나 두지 않고 고쳐 쓴 ‘새로운’ 책이다. 그럼에도 제목을 그대로 쓴 이유는 초판에서 보였던 ‘거꾸로 읽는 자세’를 전부 거둬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를 보는 편향된 시각에 균형을 맞추려 했고, 여전히 소홀하게 취급받는 몇몇 사건도 비중 있게 다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유시민에게 여러 모로 ‘첫 번째’로서 갖는 의미가 많다. 처음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달아준 책이자, 저서 중 가장 먼저 단시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인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독자 곁에 머문 책이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을 본격적으로 알린,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돌베개 2021), 『역사의 역사』(돌베개, 2018)를 있게 한 ‘유시민의 역사 3부작’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책의 수명이 점점 더 짧아지는 요즘, 33년 전에 출간된 책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다. 20대 청년의 지적 반항으로, 중고등학생의 보조 교재로, 대학가의 교양 필독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책은 이제 어디로 가닿게 될까? 부디 지나온 시간만큼 다시 한번 잘 건너가기를 희망한다.
저자
유시민
출판
돌베개
출판일
2021.10.29

 

1. 들어가는 말

역사의 기술은 그 선택에 있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각의 국가에서 소개하는 자신들의 역사도 주관적 편집을 거치게 되고 특정 관점의 역사적 사실만을 주도적으로 소개한다. 이는 어쩔 수 없이 겉에 보이는 실체와 함께 공존하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을 감추게 된다. 그런데 그 그림자에 해당하는 역사 또한 엄연한 사실이고, 그것 마저도 겉으로 드러나야 역사의 빠진 퍼즐이 완성되게 된다. 이러한 의미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라는 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역사적 사실과 관점을 알려주고, 어떤 국가와 민족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깨닫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 선택을 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는 균형잡힌 양방향의 지식을 모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2. 피해자 유대인

저자는 20세기의 서막을 여는 중요한 사건으로 드레퓌스 사건을 꼽는다. 드레퓌스 사건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이전부터 유럽 사회에 만연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육군 대위였던 드레퓌스는 독일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려 1894년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그후 독일과 내통한 사람은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임이 밝혀지고, 그것을 증명하는 많은 증거와 진술이 뒤따른다. 하지만 많은 프랑스 사람들과 언론에서는 드레퓌스의 억울함에 대해 무관심했고,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연대한 에밀 졸라를 비롯한 소수의 지식인들을 탄압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1906년 드레퓌스는 무죄를 확정받았고 명예를 회복했지만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올 수 없었다.

 

프랑스는 자유와 박애정신을 내세우면서 혁명까지 일으켰던 나라이다. 그런데 그러한 나라와 국민 마저도 나름에서의 편견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또한 그 이후에도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이어졌고 히틀러에 이르러 극단적 결과를 초래했으며, 드레퓌스 사건을 겪은 프랑스는 나치 치하의 비씨 괴뢰 정부의 주도하에서 또 다시 유대인 탄압에 동조했다. 이처럼 어떤 편견이 강하게 잡히면 법으로도 완전한 보호와 교정이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공권력이 계속해서 흑인들을 특히 강경하게 진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또한 한 국가 안에서의 지역 차별, 성별 사이에서의 차별, 직업에 따른 차별 등등으로 확장해 가다보면, 역시나 드레퓌스 사건이 단순히 민족적 차별을 넘어 ‘차별’이라는 개념 전반에 대한 상징적 사건이고, 그에 대한 지식인들의 적극적 개입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3. 가해자 유대인

한 국가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보통 가해자였던 사건보다 피해자였던 사건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설령 가해자였던 사건을 기술할 때에도 나름의 정당한 명분을 내세우거나, 방어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하거나, 상대방 국가의 발전과 개혁에 기여하기 위함이었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유대인 또한 비슷한 면이 있다. 유대인은 오랜 시간 자신들의 국가 영토를 잃고 떠돌다가 힘이 센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과거 영토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냈다. 처음에는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하겠다고 대외적으로 선포했지만, 어느순간 마치 나치가 유대인들을 게토 지역으로 격리시킨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구석으로 몰아버렸다.

 

저자는 책에서 유대 군대는 나사렛을 비롯한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파괴했는데, 주로 아랍인이 거주하던 예루살렘 동부까지 폐허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동유럽 점령지의 유대인을 마을 단위로 학살한 나치 친위대 못지않게 잔인했음을 강조한다. 또한 저자가 보여준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점거 과정과 그에 따른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때는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이제는 히틀러 못지않은 극단적 가해자가 되었고, 그 방식은 훨씬 더 교묘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세계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대인의 민족성과 그들의 교육 방식, 위대한 유대인들에 대한 홍보 등으로 그들에 대한 세계인의 긍정적 여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이 피해자였던 역사와 유대인이 가해자였던 역사 모두를 아우르면서 그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더불어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항시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4.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초창기에 많은 수탈을 당했고 그 어떤 독립적 결정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그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에 비로소 하나의 국가로 서게 되었다. 그런데 식민지의 입장이었던 미국 또한 그 당시 미국에 살던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몰아냈으며, 유럽의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적극적으로 흑인 노예제도를 유지했다. 나아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특정 국가를 지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특정 국가는 국가 존립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짓밟기도 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은 여러 열강 국가들에 의해서 국토 전체가 유린되는 경험을 했지만 지금은 소수민족들을 철저히 탄압하여 그들의 반란과 독립운동을 억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공산당에게 밀려나 대만으로 들어간 국민당은 마치 미국이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몰아낸 것처럼 대만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을 학살하고 몰아냈다.

 

베트남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오랜 시간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미국, 중국 등과도 전쟁을 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베트남 또한 공산당 정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굳이 일제 치하만이 아니어도 우리나라 또한 긴 역사의 시간 동안 많은 국가의 침략을 받았고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에서 참전한 우리나라 군인들 또한 베트남의 양민학살을 저질렀고 베트남 여성이 낳은 한국계 자녀들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지지 않았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덮어두고 베트남과의 우호관계를 말하는 것은 남과 자기 자신을 모두 속이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크게 공개되지 않은 역사들을 들추다보면 다른 나라의 치부도 드러나지만 우리의 치부도 드러나게 된다. 또한 각 개인이 때로는 피해자이면서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한 국가와 민족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균형잡힌 역사적 관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상당히 불편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위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위선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좀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다.

 

 

 

5. 맺음말

저자는 역사의 큰 흐름에서 최대한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않은 사실들을 보여준다. 위의 내용 이외에도 우리가 익히 사실이라고 알던 것들이 많은 오류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들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인종 차별의 중심에 있는 ‘백인’ 이라는 개념이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내부 구성은 다양하며, '인종'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백인'도 객관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사회적 발명품이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이 주입한 특정 개념들을 때로는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위축되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저자는 유발 하라리가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인 호모사피엔스가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은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 고 했던 말에 대해, 과연 인류가 신이 될 때까지 존속할 수나 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신이 되기 이전에 핵전쟁이나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로 절멸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논리적으로 머지않아 끝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한참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이 잡혀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릴 무렵 무언가 서글픈 결말을 내 버리는 것 같아 허탈감만 남는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 또한 부정할 수 없기에 아쉽지만 내일의 희망을 품으면서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낼 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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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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