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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2011년 한 정당의 대표였던 유시민은 정의롭고 바람직한 국가가 무엇인지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출간한 바 있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책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낡은 이론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 있었고 새로운 사례들을 추가해 개정판을 내달라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해 시민들의 개탄과 분노 속에 함께 있던 유시민은 더 이상 개정 작업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를 보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음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국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이번에 출간된 2017년 개정신판 『국가란 무엇인가』는 초판의 구성과 기본 골조가 동일하다. 따라서 유시민은 서문에서 “초판본을 읽은 독자라면 개정신판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힌다. 그렇지만 이 책은 초판과 같다고 할 수 없다. 유시민의 신변이 달라졌고, 정치 상황도 급변했으며, 시민들도 달라졌다. 개정신판에 그 변화들을 담았다. 올바른 국가의 모습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국가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닿기를 바란다. ▶ 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된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의 개정신판입니다.
저자
유시민
출판
돌베개
출판일
2017.01.23

 

1. 서두

스포츠 선수들이나 연예인들, 또는 정치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병역 문제는 주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된다. 그리고 그 병역 문제의 이면에는 국가가 있다. 한 개인이 특정 국가에 제대로 속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병역 이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국가의 국민이 타 국가로 이민을 가게 되면 물어보는 가장 대표적인 질문이 ‘전에 국가와 지금 이민 오려는 국가 사이에 전쟁이 나면 누구 편을 들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 만큼 한 국가에 온전히 속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생존과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병역 비리를 저지른 유명인들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과연 그들이 이 국가에 속할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 개인의 생존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시대의 기업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초국가적 형태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기업이 초국가적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한 개인과 그에 속한 집단의 국가관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다. 그래서 각 국가에서 다시금 강력한 국수주의와 보호무역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국가란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 개념을 넘어서는 또 다른 무언가이다. 국가를 알지 못하고는 한 개인이 온전히 설 수 없고,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국가관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를 이룬다. 따라서 추상적이기만 한 국가에 대한 개념을 각 개인이 제대로 적립해 나갈 때 그 개인이 속한 국가의 모습도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다양한 국가의 모습과 그 국가를 바라보는 국가관에 대해서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견해와 작가 본인의 견해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가의 정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2. 국가론

국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론, 즉 국가론은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큰 주제이다. 저자는 총 네 가지의 국가론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국가론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익숙한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국가주의는 국가란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 질서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합법적으로 국가의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국가론에서는 한 개인 보다 국가를 더 우선시한다. 즉,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한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 하나만 놓고 본다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어떤 논리나 어떤 법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따라서 그 논리를 적용하는 사람이 부당한 마음을 먹는다면 결과에 있어서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권력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계엄령을 선포한다든지, 또는 자신의 통치권을 방어하기 위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국가 보안법을 적용한다든지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한 개인을 희생시켜 국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개인을 희생시켜 또 다른 한 개인을 지키는 것이 된다. 또한 국가가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가의 안보만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면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개선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국가가 지원하는 특정 기업의 폭주나 특정 재화와 부의 재분배에 있어서 무관심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소수의 국민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에게 불공평함을 느끼게 할 것이고, 나아가 사회 전복이나 혁명으로 이어져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주의 국가론은 전통적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이긴 하지만 개인의 권리와 부의 재분배, 사회복지에 관한 생각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이 국가론에서 말하는 국가는 공공재의 공급자로서만 역할만 수행하고 그 이외의 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로크와 아담 스미스가 제안한 이 국가론은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이 국가론은 자유에만 집중을 하면서 평등은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해서 자유를 보장하면 알아서 균형이 잡힐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처한 환경과 재능, 조건들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균형은 깨지고 만다. 그래서 가진 자는 더 갖게 되고 갖지 못한 자는 계속 더 가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을 채택한 나라 중의 대표격인 미국을 보면 국민들의 기본적인 사회복지 혜택과 사회 치안 유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의료보험과 달리 일반 사기업에 비싼 돈을 주고 보험을 가입해야 하고, 개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비싼 돈을 주고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거나 사설 보안업체에 의뢰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혜택들은 돈이 많은 특정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고 일반 서민들의 경우에는 사회 복지와 신체적 안전에 있어서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의 국가론이다. 위의 두 개의 국가론은 일단 국가 자체를 인정하고 그 역할에 집중하는 반면 마르크스는 국가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국가라는 것이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 마르크스가 최초로 국가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정작 그는 국가를 부정하고 정치가 의미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근간으로 한 국가들은 더 강한 국가적 색채를 띠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고 결국은 소멸하거나 아니면 다른 국가론의 내용을 차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볼 때 국가는 하나의 필요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홀로 국가를 부정한다 한 들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한 개인은 싫든 좋든 어떤 식으로든 한 국가에 속해야 하고 그 국가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야 한다.

 

네 번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이는 고대의 철학자들이 주창한 이론이다. 과거 힘의 논리가 가장 강력한 권력 획득의 수단이 되었던 시대에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맹자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장했던 핵심은 국가란 선과 정의, 그리고 덕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제도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시스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소수의 의견도 경청하기에 모두가 원하는 공공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물론 이 제도 자체도 완벽할 수는 없고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보면서 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목적론적 국가론은 독재 권력을 꿈꾸는 사람들이나 자유시장 경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여전히 신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 좋을 수 있지만 다수의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이만한 국가론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애국심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애국심에 대한 부정한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었을까. 어릴 때부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이 애국심에 대한 공감적 연대를 형성했으며, 서두에서 말한 유명인들의 병역 비리를 보면서 그들의 애국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처럼 한 개인이 어떤 국가에 속해서 태어나고 성장한다면 애국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다른 사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애국심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한 적도 없고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 이상으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던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애국심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진다.

 

이 책에서는 세 명의 유명인들이 말하는 애국심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첫 번째는 피히테의 애국심이다. 피히테는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서 본인의 조국인 독일이 유린당하는 것을 보면서 ‘영원한 것은 조국 뿐이다.’라는 주장으로 맹목적 애국심을 강조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느낀 애국심은 바로 이 피히테의 애국심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애국심에 대해서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할 수 없었고 제기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톨스토이의 애국심이다. 톨스토이는 애국심은 사악한 감정이라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무모한 살상과 피폐해져가는 러시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톨스토이는 애국심이라는 인위적이고 유해하기만 한 감정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맹목적 애국심은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면 무의미한 죽음과 국가적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각 국가의 맹목적인 애국심이 충돌 하게 되면 한 국가를 넘어 양쪽 국가와 그 주변의 다른 국가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우리는 맹목적 애국심의 비참한 결말을 보았다. 따라서 톨스토이가 말한 애국심이 사악한 감정이라는 표현 자체는 조금 극단적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애국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르낭의 애국심이다. 르낭은 애국심이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인민의 의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애국심을 품는 다는 것은 함께 살면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목적에 대해 충성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르낭의 애국심은 피히테의 애국심처럼 맹목적이지도 않고 톨스토이의 애국심처럼 극단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이성적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감성적 표현이 바로 르낭이 말하는 애국심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애국심은 바로 르낭이 말하는 애국심이 아닐까 생각 해 보았다. 우리는 함께 귀속되어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실현하고 싶은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애국심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시대적 요구에 따른 적절한 수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맺음말

이 책을 보면서 큰 틀에서 국가의 의미와 그에 속해서 형성되는 애국심이나 진보와 보수, 그리고 정치인의 윤리, 나아가 국민의 자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분쟁들이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된 개념 이해나 무지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우리는 이미 헌법 제 1조에서 우리가 속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합의를 했다. 즉, 우리는 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한 국가론을 정립한 것이다. 그래서 애국심이라는 것도 1차적으로는 바로 우리가 합의한 이 내용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보수와 진보의 싸움, 우파와 좌파의 싸움도 바로 이 헌법을 근간으로 한 국가론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보수는 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한 국가론이기 보다는 전통적인 국가주의 국가론을 바탕으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맹목적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했고, 그것에 반하는 행동이나 논리는 반역이나 반동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기존 보수의 논리는 잘못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보수는 애국주의의 화신이고 진보는 그것을 깨기 위한 적대 세력인 것으로 포장을 해 왔고,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를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진보와 보수는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 태도이며 진보는 새로운 사유와 방식에 능동적인 것이고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말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역으로 우리나라와는 반대의 정치제도를 근간으로 시작한 중국의 경우는 좌파 논리가 보수이고 우파 논리가 진보이다. 즉, 공산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보수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진보가 된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는 저자의 말처럼 하나의 사유 습성이자 생활방식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논리 모두 큰 틀에서는 국가에 속한다. 결국 두 논리 모두 국가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상대적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대적 주장이 건전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때로는 통합할 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서 누가 더 애국심이 큰 지를 두고 싸울 게 아니라 각 진영에 속한 정치인들 개개인의 윤리를 따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왜냐면 국가의 근간을 좀먹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논리가 아니라 각각의 논리를 이끌어가는 그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정치인들의 책임 윤리를 강조한다. 나쁜 동기로 시작을 했든 훌륭한 동기로 시작을 했든 정치인은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질 마음가짐으로 정치에 임해야 하고, 실제로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 윤리를 바탕으로 할 때 정치인들은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주변을 살피면서 국민을 위한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국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각자의 국가론을 정립한 뒤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론적 국가론에서 말한 선과 정의, 덕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선과 정의, 덕이라는 것에 대해서 느낌은 있다. 옳은 것, 좋은 것, 당연한 것, 합리적인 것, 따뜻한 것, 보편적인 것 등의 느낌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이 개념도 상당히 많은 입장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의에 대해서 뚜렷한 결과물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 제도가 제자리를 찾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의문을 품고 생각하고 공동 담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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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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