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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마을에서 논다(성미산 마을살이 1)
희망을 꽃피운 도시 속 공동체 성미산마을 이야기『우린 마을에서 논다』. '우리 아이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한국 최초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있는 서울 마포구 동네로 모여든 부부들은 마을 뒷산 성미산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지역 주민들과 힘을 모아 산을 지켜내면서 '성미산마을'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들은 성미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도시 속 공동체의 싹을 틔우게 된다. 마을동아리들의 놀이터인 성미산마을극장, 12년제 대안학교 성미산학교, 제1호 마을기업 마포두레생협, 유기농 가게이자 마을사랑방 동네부엌, 마을카페 작은나무, 동네 방송국 마포FM 등 성미산마을살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유창복
출판
또하나의문화
출판일
2010.10.01

 

1. 서두

인간은 외롭다. 그리고 혼자서만 살아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지만 또 인간은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래서 공동체 속에서도 개인주의를 추구한다. 각각은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공동체가 형성되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하나의 독재 권력이 탄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극단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또 때로는 큰 공동체 안에서 작은 공동체들의 발언권이 커지면 님비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국가라는 전체 공동체 입장에서는 쓰레기 집하장 같은 필요하지만 혐오스러운 시설들의 건립이 난항을 겪게 된다. 반면 너무 개인주의가 보편화 되면 함께 힘을 모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빨리 처리하기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는 같이, 또 때로는 홀로 지낼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흐름도 필요하다. 더불어 각 소규모의 공동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그것을 조정해 줄 수 있는 더 큰 권력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확실히 과거에 비해서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다. 그 만큼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지만 한편으로는 외롭다. 또한 함께 사는 지역의 큰 현안들에 대해서 종합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과거 농경시대에는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지역 공동체의 부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과거에는 각 지역별 공동체들마다 자신들 고유의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한 국가에 속한 큰 문화의 아래에 다양한 작은 문화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과 지역 공동체의 붕괴로 큰 틀에서의 국가적 문화만 남게 됐다. 따라서 지역 공동체의 부활은 나아가 각 지역의 개성적인 문화적 특색을 살려서 다양한 작은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문화들이 섞이고 교류하면서 결국은 국가라는 큰 공동체의 문화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가장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는 우리나라의 중심 도시 서울에서 가장 시골적 분위기의 작은 공동체를 형성한 성미산 마을의 성공과 실패담이다.

 

 

2. 공동체의 형성

인간은 유연한 동물이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고를 잘 한다. 그리고 보통 인간들이 뭉칠 때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사람들은 강력하게 뭉친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전쟁의 위협이 크지 않다. 그래서 주거의 안정을 추구하고 주거의 안정이 위협 받을 때 뭉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바로 뭉치는 것은 아니다.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구심점은 보통 특별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서서 의견을 취합하고 나아갈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책에 나오는 성미산 마을에 발생한 문제는 서울시의 배수지 건립 문제였다. 만약 배수지 건립이 추진되면 성미산 마을에 살던 사람들의 주거 안정에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인 유창복 씨를 구심점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모두 일치했기 때문에 그 공동체의 결속력은 빠르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결국 배수지 건립을 저지할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큰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마을 공동체는 다시 개인별로 흩어지지 않은 채, 이제는 어떤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긍정적 방향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렇게 개인주의가 만연한 서울의 중심에 하나의 모범적 마을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보다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람들의 일반적 의견처럼 이 마을의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3. 공동체의 성장

성미산 마을 공동체 성장의 중심에는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는 포용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마을은 공동체 성장을 하나의 사업처럼 만들자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자신들처럼 작은 공동체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 바탕을 둔 사업을 한다면 그것은 반지하 영세공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결국 공동체 성장의 핵심은 바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성미산 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을 전체 정원의 10%이상 모집한다. 최근에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 장애인 특수 학교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뭉친 또 다른 마을 공동체와 대비되는 행동이다. 더불어 성미산 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을 ‘특별한 요구가 있는 학생’으로 부른다. 즉, 신체적 장애를 우열함과 열등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장애 학생의 신체적 단점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장애 학생의 강점을 찾는 데에 더 집중한다.

 

어떤 한 도시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3가지(3T)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첫 번째는 테크놀로지(1T), 두 번째는 재능(talent) 있는 사람(2T), 세 번째는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게 만드는 관용, 즉 톨러런스(3T)이다. 그래서 발달된 도시의 순위는 게이 지수, 즉 동성애자의 거주 비율과 일치한다고 한다. 동성애자는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이다. 그래서 동성애자 마저도 포용할 정도의 관용이면 그 도시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미산 마을이 동성애자는 아니어도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장애 학생을 대하는 그 넓은 관용의 마인드가 아마도 이 마을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문턱과 경계

어떤 특정 공동체가 형성되고 나면 그 자체로 어떤 구분과 경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즉, 주변의 다른 개인이나 공동체와는 그 내부의 문화적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공동체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으면 그 공동체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공통체는 보통 그 존재 기반을 상실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다. 즉, 아무리 나름의 특성이 있는 공동체도 결국은 다른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공동체의 진입 장벽을 아예 없애게 되면 그것 또한 공동체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하나의 공동체는 그 내부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공동체의 주변 사회와 어우러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경계선의 높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 적당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따른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높지 않은 문턱, 넘나들기 쉬운 경계를 만드는 것이 성미산 마을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말한다.

 

종종 언론에서는 가장 살기 좋은 국가,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순위를 보도한다. 살기 좋은 국가나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 중 가장 큰 핵심은 바로 치안이다. 안전이 보장된 뒤에라야 나머지 것들이 따라올 수 있다. 작은 마을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무언가를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상호 신뢰는 치안의 안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공동체의 경계가 아예 무너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새롭게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드나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호 신뢰 관계는 사라질 것이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강 전체의 물을 흐릴 수 있는 것처럼 공동체 안의 작은 변화는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 만큼 공동체의 존립 기반은 상당히 아슬아슬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5. 공동체의 유지

성미산 마을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나 그 뿌리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성미산 마을 공동체를 비롯한 모든 공동체는 어떻게든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은 아예 장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미산 마을 공동체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때로는 그것을 수정하고, 때로는 그것을 발전시키고, 때로는 그것을 포기한다. 그런 조금은 뒤죽박죽인 과정 속에서 서서히 한 공동체의 특별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부럽게 느껴진 것은 ‘돌봄 노동’이다. 마을 공동체가 무너진 뒤로 지금 우리 사회는 바로 옆집 사람과도 큰 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올곧이 한 가정 내에서 다 해야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교류가 없으니 서로를 알 수 없고, 서로를 알 수 없으니 더 많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런데 성미산 마을의 경우는 이미 어느 정도 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신뢰가 쌓였다. 그리고 한 두 가정이 아닌 여러 가정의 어울림이 생기면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그 덕분에 각 가정에서는 마음 놓고 아이들을 다른 가정에 맡길 수 있고, 각 가정의 아이들을 묶어서 또 다른 모임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아이들과 자전거로 유럽을 횡단하는 택견 사부님과 같은 사람이 이 마을에 탄생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마을의 또 다른 강점은 마을 기업이다. 특히 이 마을 기업의 설립과 운영 취지가 독특하다. 마을 기업은 시장 논리를 조금은 비껴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익성을 시장 논리와는 다른 틀로 읽어 보고 노동과 고용 역시 익명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지역과 관계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 볼 때, 그 본래의 의미가 더 선명하게 배어 올라올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들풀의 성장과 비교한다. 둘풀들은 땅 위에서는 제각각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치 아래 땅 속을 보면 그 뿌리들은 서로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얽혀 있다. 이는 마을 기업의 성장 지표인 내부자 거래 밀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이 들풀들의 성장처럼 하나가 뛰어나서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마을 기업들이 함께 들풀처럼 서로 얽히면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그래서 이 마을의 기업들은 극단적 이익 추구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 게임기를 가게 앞에서 거두는 문구점 사장님도 있고,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도 있다. 또한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학교가 있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파는 쿠키샵도 있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만으로는 백 프로 이해하기 힘든 이 마을의 독특한 기업적 특성인 것이다. 물론 원가를 공개하고 운영했다가 경영이 힘들어서 폐업한 자동차 정비소 ‘차병원’ 같은 것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작은 기업들이 끈끈하게 들풀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결국은 또 다른 독특한 ‘차병원’이 생길 수 있는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성산 마을 공동체는 서서히 깊이, 그리고 넓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6. 공동체의 미래와 맺음말

거대 자본이 독점적 지위를 강화시켜가는 만큼 과거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던 각종 소규모의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다. 가장 대표적으로 동네 빵집과 프랜차이즈 빵집을 비교한다. 지금 사회는 이처럼 한편에서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한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해지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문화가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문화적 유행은 이제 전 세계를 휩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것을 통해서 또 탈 개성화로 흐르는 경향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양 극단의 흐름 속에서 그 중간이 존립하기는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들은 그 중간적 존재를 그리워하고 필요로 한다. 그래서 다시금 프랜차이즈 빵집을 이기는 동네 빵집들이 약진하고 있고, 성산 마을 공동체처럼 크든 작든 어떤 소규모의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작은 공동체들의 독특한 문화는 다시 국가 전체의 문화적 특성에 자양분을 공급하게 된다. 마치 강릉의 카페 거리에 각각의 독특한 카페가 따로, 또 같이 뭉쳐서 독특한 카페 문화를 만들고, 거기서 시작된 특정 카페 문화가 다시 전국의 다른 카페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더불어 더 작게는 이미 많이 사라진 마을 단위의 작은 지역 공동체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물론 작은 공동체는 그 존립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생겨날 수도 있고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끊임없는 시도 속에서 문화적 역동성이 살아나고 한 개인도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닌 어떤 공동체의 소속 안에서 한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더 든든하게 큰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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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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