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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두

인간은 모든 것에 있어서 그 기원을 알고자 한다. 기원을 알고자 함은 건 건물의 토대를 세우는 것과 같다. 건물의 토대가 튼튼해야 그 위로 어떤 모양의 건물이든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 기원을 정확하게 많이 알아야 기준을 잡을 수 있고 그 다음의 이론 전개도 훨씬 풍성하고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다. 언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지금도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변해가게 될 말과 글의 기준을 잡기 위함이다. 이 책은 알파벳의 기원에 관한 글이다. 우리가 단어 공부를 할 때 어원을 알면 그 단어를 더 쉽게 외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원 너머의 부분에서 시작한다. 즉, 단어를 표현하는 알파벳이라는 문자 자체의 기원을 파헤친다. 알파벳은 단순히 영어에만 쓰이는 문자가 아니기에 그 문자의 기원을 알아간다는 것은 유럽 문화의 기원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2. 알파벳의 유래와 일신교

우리가 아는 알파벳은 표음 문자이다. 즉,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가장 비교되는 문자가 바로 표의 문자인 한자이다. 이는 소리가 아닌 시각을 바탕으로 하기에 어떤 형상과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해서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이 이 책을 통해서는 조금 깨지게 된다. 왜냐하면 알파벳이라는 문자도 그 기원이 표의 문자에 해당하는 상형 문자를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알파벳이라는 문자가 최종적으로 형성되기까지 그 연원을 따져 들어가 보면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벳의 철자 속에도 그 기원이 되는 형상과 이미지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형문자와 같은 표의 문자가 표음 문자로 바뀌게 된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유대인들의 일신교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유대인들의 성경에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도록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라는 구절이 있다. 이 내용처럼 상형문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우상 숭배의 의미가 될 수 있기에 그것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명확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상형문자는 조금씩 추상적인 알파벳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 무렵 해상 무역을 지배하던 페니키아 족을 통해서 널리 전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리스와 로마를 거치면서 유럽 언어 사용을 위한 문자의 근간이 된 것이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알파벳이 만들어지기까지 종교의 힘, 그리고 국력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충실함과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강력한 국가의 힘이 없었다면 알파벳이 만들어지거나 확장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실용성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형문자를 쓰는 것보다 좀 더 단순화한 알파벳을 쓰는데 훨씬 간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알파벳의 상징적 의미

이 책에서는 알파벳 각각의 철자의 기원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A'는 황소를 상징한다고 한다. 실제로 고대 셈와 히브리어에서는 'A'를 첫 글자로 사용한 'aleph'가 황소를 의미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황소를 상징하는 'A' 알파벳의 첫 글자가 되었을까. 인간이 이 세상을 개척하여 살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가장 중요하고, 그 힘을 발휘하는 실생활의 대표적 동물이 황소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황소는 밭을 갈고 물을 긷고 짐과 사람을 나르는 등 대부분의 큰 힘을 쓰는 일에 사용되어졌다. 그러한 중요성 때문에 황소를 상징하는 'A'가 알파벳의 첫 글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황소라는 동물의 상징성처럼 힘, 존재, 남자, 가능성, 시작 등을 의미했다고 한다.

 

한편 'C'는 히브리어의 낙타를 의미하는 단어의 첫 번째 철자라고 한다. 이는 낙타, 자기에게서 벗어남, 단절, 성숙 등을 의미했다고 하는데, 낙타의 활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고대에 낙타는 사막을 넘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사막을 넘는다는 것은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고, 그 자체로 기존의 안락함에 대한 단절과 독립을 위한 성숙을 의미한다.

 

또한 ‘O’는 ‘눈’과 ‘샘’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oyin’의 첫 글자이다. 그런데 이 ‘O’라는 글자는 눈이나 샘의 이미지와 거의 유사하다. 알파벳이 기존 이미지를 희석하여 추상적 형태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원래의 이미지가 많이 남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눈’을 상징하는 만큼 원래는 보기, 응시하기, 의견을 묻기 등의 의미였는데, 여기서 발전하여 가시적인, 동그라미, 순환, 구멍 등의 의미까지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는 모드 'O' 라는 철자의 모양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그런 의미들인 것 같다.

 

이처럼 알파벳 철자의 원래 상형문자적인 의미를 보면서 알파벳이라는 문자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기원을 이해한 만큼 더 많은 관점에서 철자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알파벳에는 처음 시작된 그 기원의 상징적 의미들이 많이 희석되거나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흔적들이 남아서 그 과거를 생각하게 하고 그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 같다.

 

 

4. 문자 고고학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모든 민족이 목소리들을 보았다.”라는 말이다. 목소리는 듣는 것인데, 어떻게 본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그것은 표음 문자가 표의 문자인 상형문자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문자 고고학은 이처럼 음성을 바탕으로 한 문자의 기원을 파헤쳐 들어가서 초기의 이미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초기의 이미지는 다양한 관점의 해석과 상상을 낳게 되고 그것은 또한 다양한 단어로 발전하게 된다. 그 만큼 하나의 이미지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또한 철자라는 것은 원래 형태와 지금의 형태 사이에서 계속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하나의 철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이미지는 이미 현재의 철자 속에 그 흔적만을 남기고, 지금의 철자와는 별개로 따로 존재하지만 그 시작의 이미지가 또 현재 철자의 변용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알파벳의 철자가 변해 왔지만 향후에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철자의 기원은 항상 그 자리에서 어떤 기준점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5. 맺음말

이 책을 보면서 문자 고고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고고학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을 추적하고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자도 고고학의 관점으로 연구해 나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 고고학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은 또 현재의 우리 모습, 나아가 미래의 우리 모습을 추론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만큼 E.H. 카의 말처럼 어떤 역사을 알고 그 기원을 찾아가는 것은 결국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위함이다. 그래서 과거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현재는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 또한 알파벳이라는 문자 하나를 가지고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 만큼 중국의 한자나 우리나라의 한글, 인도의 데바나가리 같은 문자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알파벳처럼 각 민족의 역사와 발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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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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