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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보잘것없던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과거를 개관한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어떻게 인류가 결국에는 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추측하며 미래를 탐색한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이번에는 현재의 인류를 살펴본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환멸, 일, 자유, 평등, 종교, 이민, 테러리즘, 전쟁, 교육, 명상 등 21가지 테마로 나누어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계에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기술이 야기할 모든 영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로 그것이 초래할 위협과 위험을 조명하고자 한다. 1부에서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을 개관하고, 2부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반응들을 폭넓게 살펴본다. 3부에서는 테러리즘의 위협과 전 지구적 전쟁의 위험, 그리고 그런 분쟁을 촉발하는 편견과 증오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살펴본다. 4부에서는 탈진실 개념을 살펴보고 어느 정도까지 세계의 전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며 정의와 잘못을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 5부에서는 이 혼돈의 시대에 처한 우리의 삶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민족과 종교, 인종주의에 갇혀 반목하고 있는 인류의 오늘은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 그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18.09.03

 

1. 서두

변화가 천천히 일어났던 과거에는 기존에 이어져 내려오던 지식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기존의 지식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교육을 시킬 역량이 되는 스승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은 과거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사실 교육 시스템 자체를 무조건 비난하기도 힘들다. 대학 입학이라는 최종 목표가 있고 그것을 향한 레이싱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자면 어쩔 수 없이 시험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험은 서열을 구분해야 하기에 변별력이 있어야 하고, 이는 결국 시험을 위한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을 시키려 하면 대학 입학이 걸리고,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자면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대비한 주입식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에게 학생 선택의 자율권을 주면 또 뒤로 기부입학과 같은 형태의 부정적 흐름이 생길 수 있다. 또 대학의 서열을 없애자면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학벌지상주의 의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기존에 유지되어 온 사회적 관습은 그 자체로 인정하면서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과거의 우리 조상들이 바라 본 미래 이상으로 불확정적이다. 즉, 국가를 비롯한 정치인들, 학자들, 기업인들 모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책임질 준비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발 하라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들에게도 어떤 확실한 답은 없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계속 경고하고 깨어있으라 하고 스스로 인식하라고 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기존의 두 권의 책의 내용들에서 보여줬던 문제의식과 추가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기존 책과 비슷한 내용들이 많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좀 더 세밀하게 정돈된 화두를 던지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 자유와 평등

저자는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함께 자유와 평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류가 보편적으로 온전하게 자유와 평등을 누린 시기가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자유와 평등이 위협받는 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위협하는 존재가 같은 인류가 아닌 정보기술과 생명기술로 무장한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 마저도 빅 데이터의 알고리즘이 장악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방향성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을 제어하는 빅 데이터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특정 소수 세력이다. 일반 개인이 빅 데이터의 정보에 접근하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특정 세력과 빅 데이터로 무장한 인공지능에 종속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특정 세력마저도 결국은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해서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자기 자신 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하위 계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조정할 세력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눈앞에 빙하가 오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는 타이타닉 호처럼 어쩌면 우리는 예정된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혁명은 기술자와 기업가, 과학자들이 만들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3. 일자리

우리는 이미 많은 단순 업무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 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항공 탑승권의 발권, 식당에서의 주문, 마트에서의 계산 등등 많은 것들이 무인화 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과거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상위 집단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람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위 집단에 맞서는 모양새로 전개될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기존의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그 사이를 인공지능이 대체하며 그러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관리하는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일부의 직종은 미래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넓은 범위의 기술들을 동시에 구사하면서 예측하기 어렵게 발생하는 특정 상황에 대해 유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환자와 노약자를 돌보는 휴먼 케어 분야는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음악과 같은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예술 분야도 빅 데이터의 분석에 있어서 취약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주장과 달리 얼마 전 모 다큐멘터리에서는 인공지능이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조한 재즈 음악이 실제 인간이 창조한 재즈 음악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더구나 미술 작품에 있어서도 인공지능의 작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채팅 데이트에서 인공지능을 마음에 드는 상대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만큼 저자의 주장과 달리 의외로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지 못하는 직업이 거의 없을 가능성도 큰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인류와 기계 사이의 일자리 다툼이다. 결국 먼 미래에 인류의 많은 직업군이 사라지겠지만 거기에 이르기 전에는 분명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미 택시 업계와 카카오 카풀 서비스나 우버와 같은 서비스 등의 충돌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또한 모 은행의 파업이 과거와 달리 은행 업무 유지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만큼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기술력과 인류 사이의 투쟁은 바로 우리 옆에 와 있다. 그런데 당분간은 기계가 일방적으로 많은 일자리를 선점해 나갈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기계에게는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무조건 경제적 효율성에만 집중해서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기는 힘들다. 그래서 저자는 정치적 결정과 문화적 전통이 기술적인 발전 못지 않게 상황 전개에 영향을 줄 것이라 말한다. 결국 자율주행 차가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저렴해도 정치인들과 일반 소비자들은 전면적으로 자율주행 차가 장악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4. 호모 사피엔스의 위기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 기술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보편적인 인간의 의식을 증진하는 데에는 너무 적은 투자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기술을 다루고 통제해야 하는 인간 전체의 의식 증진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미래의 기술력은 특정 부유층이 독점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불어 생명공학기술과 접목된 정보기술은 특정 계층만의 진화를 위해 사용될 것이다.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는 슈퍼 휴먼 계층이 등장하고,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는 쓸모없는 하위 계층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위 계층으로 전락한 호모 사피엔스는 경제적 중요성과 정치적 힘을 상실하게 되고, 이들을 위해서 국가가 투자를 해야 하는 동기도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방어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데이터 소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이러한 데이터가 소규모의 특정 세력에게만 집중되면 대다수의 호모 사피엔스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데이터 소유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의 사회정치적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다행히 세계는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주권과 종교, 민족, 문화 등이 달라도 충분히 공통의 문제에 대해서 전 세계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특히나 미래의 문제는 단지 특정 국가나 특정 민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인류는 지역적 충성심을 지구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인 의무감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5. 도덕과 교육

저자는 도덕에 대해서 각 민족과 국가별, 종교별로 상이한 상대적 기준이 아니라 아주 보편적 기준을 말한다. 즉, 도덕이라는 것은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명령이라는 것은 민족의 전통적 도덕률, 또는 각 국가가 문화적 특성에 맞게 만든 도덕률도 포함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도덕은 고통에만 집중하면 간단하게 비도덕적인 것과 구분이 가능함을 저자는 보여준다. 어떤 특정 행동이 어떻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낳는지 이해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멀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도덕에 대한 새로운 가치 정립과 함께 교육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향후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 중요한 것고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 수많은 조각으로 분리되어 있는 정보를 조합해서 나름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각 개인별로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데에 거부감을 줄이고, 낯선 상황이나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야 함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결국 향후 불확정적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일반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대안은 바로 고정관념이나 기존의 관습에 묶이지 말라는 것이다. 좀 더 큰 틀에서 지금의 모습을 조망하고 언제든 변화의 흐름에서 물타기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이는 국가가 해 줄 수도 없고 특정 집단이 해 줄 수도 없고 특정 학자들이 해 줄 수도 없다. 각 개인 스스로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6. 맺음말

저자는 욕망에 큰 의미를 두고, 그 욕망이 시작되는 자아를 하나의 강력한 실체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자아는 정신의 복잡한 메커니즘이 지속적으로 만들고 업데이트 한 허구적 존재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미 사람의 감정 발현과 정신적 활동마저도 알고리즘의 틀에서 이해할 수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일단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말한다. 최첨단의 기술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명상을 들먹이는 게 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명상의 효과에 대해서 상당히 진지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명상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 패턴을 명확하게 이해하면서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물타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한 개인이 시대적 변화를 주도했던 적은 없다. 또한 다음을 명확하게 예측하면서 오늘의 선택을 한 적도 없다. 그 만큼 우리는 언제나 불확정적 상태 속에서 살아왔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변화에 비해서 더 큰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이 느꼈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지금의 우리가 갖는 불안감의 강도는 비슷할 것이다. 따라서 내일에 대한 큰 두려움 때문에 오늘의 삶이 짓눌린다면 그게 바로 가장 큰 불행일 것이다. 우리는 내일의 멸망을 알아도 때로는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는 그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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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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