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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름다운 무언가에 대해서는 ‘별처럼 빛난다’고 말하고,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면 별자리로 운을 점치며 ‘우주의 기운’이 함께하길 빌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이란, 달과 별과 우주란 어떤 의미일까. 할리우드 영화 속 과학자들의 ‘액션’은 스릴이 넘치고 미항공우주국과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일지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뉴스들이 오히려 천문학을 딴 세상의 이야기로 치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속 천문학자 심채경이 보여주는 천문학의 세계는 그러한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멀다. 빛과 어둠과 우주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천문학자도 누구나처럼 골치 아픈 현실의 숙제들을 그날그날 해결해야 한다. 다만 그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적으로’ 골몰할 뿐이다. ‘지구는 돌고 시간은 흐른다’는 우주적이고도 일상적인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천문학자의 이야기는 그러하기에 더욱 새롭고 아름답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_「프롤로그」에서
저자
심채경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1.02.22

 

1. 들어가는 말

별을 보는 것은 과학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별은 인간의 존재를 하늘 속에 확장적으로 투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 이전에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칼 세이건이 지은 <코스모스> 라는 책도 우주에 관한 과학적 이야기이고 그 과학적 내용을 다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통해 우주에 대한 감상적 동경을 품게 된다. 이성적 과학이 감성적 문학의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마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 대한 김상욱 교수의 소개가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천문학은 다른 과학 분과의 이름과 달리 ‘문학’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즉, 하늘을 관찰하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우주라는 존재 자체가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 인간의 감각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하늘에 대한 연구는 문학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무한함에 대한 꿈이 없다면 접근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추정 속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천문학자는 천문학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심채경 선생님의 책에는 과학 속에 문학이 녹아 있다.

 

 

2. 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자의 일상

하늘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하늘의 별을 보지 않는다는 게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거대한 천문 망원경으로 하루 종일 하늘을 보는 것은 이제 과거의 유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여전히 천문 망원경도 존재하고 전파 망원경도 존재하고 우주 망원경까지 나온 상황이다. 그리고 여전히 하늘을 보고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으로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를 통해 전송된 데이터를 연구한다고 한다. 자신이 긴 시간을 내어 관찰하는 것 이상으로 전문 관찰 장비에 의해 수집된 자료들을 보는 것이다.

 

또한 천문학자는 별을 관찰하며 무언가 일상을 벗어나 꿈을 꾸는 인생을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저자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꾸리고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에 개입하여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하늘의 별들이 그 생애가 치열한 만큼, 일상의 인간 또한 어쩔 수 없이 존재를 위한 치열한 시간을 이겨나가야 하는 것 같다.

 

더불어 저자는 여성 과학자로서, 그리고 여성 천문학자로서 살아가는 중에 겪는 각종 차별과 편견에 관해서도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에 관한 생각을 말한다. 원래 우주인으로 발탁된 사람은 고산이라는 남자였다. 그런데 출발 전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소연이라는 여자로 교체가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남자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식의 비판을 쏟아냈다. 그런데 저자가 생각할 때 이소연은 여자라는 성별 이전에 기계공학과 생명공학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우주정거장에서 연구를 수행할 더없이 훌륭한 인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자격 조건으로는 우주인이 될 수 있는 충분함이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성별, 그리고 앞서 남자 우주인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부정적 의견들 속에서 그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 개인적 소견은 이소연이 여자이고 고산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몇몇 발언과 국민의 기대와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비판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조건 문제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그녀의 업적과 성과는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우주인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한 명의 과학자로서 그녀의 경험은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3. 과학적 세심함 속에 내재한 문학적 감수성

저자는 인간의 80세 정도의 일생과 비교했을 때, 몇 배나 되는 수백 년 뒤에나 도착할 곳에, 그것도 어떤 답신을 들을 수 있는 확신도 없으면서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는 무해한 사람들을 동경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구체적 현상을 다루는 것이기에 세심함이 기본일 것이다. 과학의 한 분과인 천문학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천문학이 바라보는 영역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그래서 세심함으로 막연함을 바라보게 된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끝을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오늘 할 일을 하면서 그 언젠가를 기약해 보는 마음이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미항공우주국이 제공하는 보안 기간이 끝난 각종 천체 사진들을 볼 때, 그것이 현실의 분석 대상이라는 하나의 객체적 접근보다는 신비로움으로 다가오고 낭만적 시선이 느껴진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우주의 경이로운 사진들을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무의미해지고, 그 속에서 어떤 손에 잡히는 구체적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숙연함이 앞설 것 같다.

 

그런데 또 천문학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발표된 이후로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고, 물리학의 시작도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으며, 뉴턴이 달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물리학 법칙을 발견한 것 등을 보면, 천문학은 막연하지만 많은 새로움의 보고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천문학은 세심함 속에 문학적 감수성이 있기도 하지만, 문학적 감수성을 시작으로 무한한 세심함의 영역을 창출해 내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아무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에게 갑자기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를,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색다름으로 다가온다. 지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시간에 15도씩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지구의 역동적 움직임 만큼 이 우주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러한 급변하는 역동적 우주 속에서 나는 또 인생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우리는 우주의 움직임 속에 있기에 때로는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는 또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지구라는 우주선에 탄 여행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자처럼 지구라는 우주선 밖으로 펼쳐치는 풍광을 멈춰서 관찰하는 여유를 즐겨도 된다는 것이다.

 

 

4. 맺음말

저자는 광활한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보이저 호에 대한 이야기 속에 우리의 인생을 담는다. 보이저 호는 이미 지구에서 가져간 연료를 다 사용했지만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계속 전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각자의 인생이라는 우주에 태어나 부모님을 만나고 독립하여 각자의 우주를 만들면서 막연하지만 또 무한한 자신만의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음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천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막연한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또 역으로 막연한 우리 인생을 연구하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어릴 때 밤하늘을 보면서 별자리의 모양을 찾아보고 그려보던 경험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책은 과학자의 책이라기보다는 엄마가 어릴 때 읽어주던 동화작가의 책처럼 느껴진다. 이는 저자와 우리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또 어릴 때 경험한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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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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