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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늑대의 파수꾼
창비청소년문학상 아홉 번째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청소년들이 흠뻑 빠져들 만한 문학적 긴장과 재미를 품고 있다. 문학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기억될 작품이다.
저자
김은진
출판
창비
출판일
2016.04.18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일단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그와 유사한 경험들의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과거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살았던 시대와는 틀리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열심히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밤낮없이 일을 했고, 우리 조부모님 세대는 일본의 억압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두 시대 중에서는 아마도 나라를 잃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일제 치하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훨씬 편안하고 안전하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여러 문제들이 있다. 여전히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당한 일들이 TV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고, 학교 내에서도 학교 폭력과 왕따, 각종 성추행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부당한 일들의 당사자가 되고 나면 사람들은 과거에 살던 사람들이 당한 부당한 일들에 대해서도 훨씬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거 우리 조부모님 세대들과 그 이전의 세대들이 겪었던 일제 치하에서의 위안부 문제에 관련한 부당한 일들에 집중하여 이야기한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도 완전히 그 피해 당사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도 직접 위안부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겪는 지금의 많은 부당함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미루어 짐작 할 뿐이다.

 

 

2. 줄거리

이 책의 제목인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이 책의 주인공인 햇귀라는 아이의 인디언식 이름이다. 그런데 햇귀는 이러한 멋진 인디언식 이름과는 달리 같은 반의 태후라는 친구에게 항상 괴롭힘을 당한다. 태후는 공부도 잘 하고 잘 생긴 아이였다. 그런데 그러한 특별함을 가지고도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고 부족한 것이 많은 햇귀를 가만 두지 않았다. 햇귀의 아빠는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햇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와 함께 비상식량 하나에도 안절부절 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낸다. 특히나 햇귀는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는 학원도 다닌 적이 없었다. 그러나 햇귀는 공부를 잘 했다. 그래서 외고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도 됐다. 다만 봉사활동 점수가 미달이어서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봉사활동을 위한 자리를 하나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집에 가서 청소도 해 드리고 말벗도 되어 드리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쳐다보지 않는 곳에서 계속 태후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햇귀는 우연히 피해서 달아난 벽장 안에서 낡은 회중시계 하나를 발견한다. 그 시계에는 Race the clock, 즉 시간과 싸우라는 의미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를 통해서 햇귀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햇귀가 도착한 곳은 1940년대 일제 치하의 시대였다. 그곳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봉사활동을 위해 갔던 할머니의 집도 현재 보다 훨씬 새로웠고 거리의 풍경들도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그곳에는 바로 자신이 현재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할머니의 어렸을 때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자 현재 봉사활동을 해 드리고 있는 할머니의 이름은 현수인이었다.

 

현수인 할머니는 일제 치하에서 위안부로 끌려가서 피해를 당했고, 그 기억 때문에 평생을 마음의 고통과 수치심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햇귀는 그 일제 치하의 시대 속에서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를 바꾸고 미래를 바꿔서 할머니를 구하게 된다. 그 시대에 살던 후지모토라는 일본인은 현수인의 가정을 파괴했고, 가수가 되고 싶었던 그녀를 빼앗아서 종처럼 부리고 위안부에 넘기려고 온갖 나쁜 방법을 동원했다. 한편 후지모토의 딸인 하루코는 미래에서 왔다는 햇귀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수인을 위안부에 보내려고 한다는 말을 듣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분을 바꾸고 낯선 사람들을 따라간다. 그런데 하루코는 배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정말로 나쁜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믿었던 아버지의 나쁜 행동들을 보고 하루코는 충격을 받아서 배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타인의 시간을 빼앗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한 문장만 써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코가 현수인 대신 위안부로 끌려갔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현수인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녀는 무료로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서 위안부 배에 올랐던 것이었다. 한편 한국의 여자 아이들을 거짓말로 속여서 위안부로 끌고 간 장본인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하루코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 세뇌를 하면서 고통스러운 마음을 이겨내려고 한다. 그렇게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을 하루코는 마침내 온전히 인정하게 되고, 죽을 때 자신의 손녀에게 ‘미안합니다, 마음으로부터.’라는 사죄의 말을 남긴다.

 

어쨌든 햇귀는 바뀌기 전의 과거에 개입해서 새로운 과거를 만들고 현수인 할머니를 지킨다. 태후에게 당했던 자기 혼자만의 부당함에는 꿋꿋하게 참았지만 자신의 친구가 된 현수인 할머니의 어린 시절 아이는 용감하게 구한 것이다.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결국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던 것이다.

 

 

3. 감상 및 맺음말

이 책을 읽고 난 후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여러 가지 내용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서 협상과 타협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서는 우리가 일본의 어떤 변명도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제대로 된 사과냐 아니냐의 문제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사과도 안 하면서 적당히 돈으로 보상하려 하거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고 민간 단체를 통해서 얼버무리는 식으로 사과를 하는 것도 안 된다. 어차피 위안부 할머니들의 망가진 삶은 보상받을 수 없다. 즉, 엄청나게 많은 돈도 그분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만 당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분들의 삶에 대한 명예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다고 어설픈 타협으로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일본 정부가 잘못된 것이지 일본 사람 전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많은 공감을 표시하고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싸워주고 있는 일본인들이 꽤 많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일제 치하에서 벌어진 많은 부당한 자기 민족들의 행태에 대해서 같이 분노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그 나쁜 행위의 당사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자기 민족의 과거 행위에 대해 사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사람들 전체가 나쁜 행동의 당사자들인 것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을 얘기할 때는 그들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냥 ‘일본놈들’이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러한 호칭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용하는 것은 일제가 우리에게 했던 말도 안 되는 부당한 행위들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정당함을 지키면서 일본 사람들 전체가 아닌, 일본 정부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셋째,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자신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귀가 태후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처럼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많은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제의 만행에 비하면 약한 것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부당함에 있어서는 크고 작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건 나쁜 것이지 큰 나쁨과 작은 나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일제 치하에서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낸 만큼 우리가 부당하게 느꼈던 것들을 우리 민족끼리, 또는 다른 민족에게 행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 뿐만 아니라 귀화 외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내부의 부당함도 정당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일본 정부에게 사과를 요청하는 것은 미래의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같이 주시하고 반성하고 고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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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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