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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023년 8월 유노북스에서 펴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전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철학 교양서로는 최초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마흔’, ‘오십’, ‘서른’ 등 연령을 키워드로 한 인문 교양 도서들이 휩쓸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나이들며 겪는 환경과 감정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지혜를 책에서 찾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철학과 함께 풀고 있다. 특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일으킨 ‘쇼펜하우어 신드롬’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생각과 말이라면 시대와 상관없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더 반가운 점은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40대와 50대가 개인의 독서를 넘어 SNS, 유튜브에 글귀와 자기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독서 경험이 20대와 30대, 60대와 70대의 다른 세대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중심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강용수는 쇼펜하우어의 지혜들을 가장 정확히 해석하고 가장 탁월하게 40대의 삶과 연결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담아냈다.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40대 이야기와 주옥같은 말들을 만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오늘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긴다” 등의 명언을 남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고통이라면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서 자신으로 옮기는 ‘진짜 행복’을 위한 고통을 겪으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이다.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다다르는 마흔, 또는 마흔을 앞두었거나 되돌아보는 나이라면 쇼펜하우어를 만나 보라. 인생의 고민들을 떨치고 마음을 다스리는 통찰력과 행복의 열쇠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강용수
출판
유노북스
출판일
2023.09.07

 

공자는 마흔을 일컬어 불혹이라 칭했습니다. 불혹이란 세상 일에 미혹되어 판단이 흐려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어릴 때 40대의 나이를 생각하면 까마득하기에 대략 40대가 되면 그런 미혹되지 않는 지혜와 판단력이 생길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4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방황 중에 있고 판단력이 무조건 맞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 40대를 지나서 살아가는 많은 유명인들의 실수를 보다 보면, 40대를 지나면서 무언가 특별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40대에 이르면 어떤 극단적 변화를 추구하기는 힘든 시기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보통은 가정을 꾸린 상태이고 자녀가 성장하여 돈이 많이 필요해지는 시기이며 한 분야의 직업적 연륜이 쌓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둘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나 지혜의 수준은 여전히 20대이지만 상황만 40대라는 특수성에 묶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라는 책의 제목도, 마흔에만 읽어야 하거나 마흔에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흔이라는 인생의 분기점을 이해해야 하는 모든 나이대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마흔, 왜 인생이 괴로운가

1장에서는 인생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그 표현을 단지 지식이 아닌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40대 즈음이 될 것입니다. 보통 행복이라 함은 고통을 지난 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궁핍과 결핍을 이겨내고 풍요로워졌을 때 행복감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기본적 채워짐을 넘어 과잉 상태가 되면 행복이 아닌 권태로움이 찾아오고, 권태로움은 궁핍과 결핍에서 비롯되는 일반적 고통 만큼이나 심리적 괴로움을 선사하게 됩니다. 그런 만큼 잘 사는 사람들은 무조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들 나름의 권태라는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고, 또 잘 사는 사람들끼리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결핍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떤 물질적 충족의 과잉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궁핍과 충만의 중간 즈음에 행복이 위치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극단적인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세팅한 사람은 엄청난 부자이지만 권태로움에 빠져 과거를 한 번 추억해 보고 싶은 사람이었고,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궁핍과 결핍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다 불행한 상태임을 드라마를 보다 보면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욕망의 크기를 줄이라는 것입니다.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려간다고 그곳에 행복의 파랑새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정한 선에서 균형감을 유지하려 하고, 그 안에서 만족감을 찾을 때 우리는 지속적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균형감있는 인생은 평범하고 평균적 인생을 의미하게 되는데, 그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 따라서 행복도 결국은 노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장 왜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2장에서는 행복을 향한 출발점이 불평과 불만이나 어떤 불가능한 희망과 목표의식이 아닌 현재에 대한 인정이라고 말합니다. 즉,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객관적 자기 인식으로부터 행복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때로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남의 것을 강압적으로 빼앗아서 인생의 역전을 노려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한탄이나 인생의 변화를 위한 발버둥 모두 인생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살아보고 싶은 표현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현재에 대한 상황 인식은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은 주관적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나름에서의 행복의 기준이 있고,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의 행복의 기운이 있으며, 각각의 나라 안에서도 각 개인만의 행복의 기준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하고, 그 두 가지를 적당히 균형감 있게 채울 수 있는 기준과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조건 그것을 할 수 없는 것은 불행이고, 능력이 안 되는데 그 이상의 능력이 필요한 자리를 원하는 것도 불행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내 자신에 집중하면서 객관적 틀을 유지해 갈 때 굳이 행복이라 칭하지 않아도 삶의 만족과 완성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3장 무엇으로 내면을 채워야 하는가

3장에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40대를 향해 가는 동안 자신의 안을 보기보다는 밖을 보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외부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관계의 스킬을 익히며 사회가 추구하는 각종 출세, 명예, 부유함을 향해 달려갑니다. 자신만을 위한 휴식과 취미도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만의 기준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기준에 어느 정도 맞추려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이 더 커지는 상태가 되고, 판단의 명확한 기준이 잡히기보다 오히려 더 큰 혼돈과 변덕심이 커지는 생태가 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생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외부의 어떤 것이나 외부를 향한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함을 말합니다. 외부에서 추구하는 유행이 아니라 순수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예술이나 시와 문학, 철학 등을 향유해야 합니다. 그렇게 외부의 다른 사람들을 ‘우리’ 라는 한 묶음 속에 놓고 자신도 거기에 끼워 맞추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로 놓고 그들과 나를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내 안에 심취하는 시간을 갖게 될 때, 객관적 자기 인식과 인정,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4장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4장에서는 자신에 대한 인정 이후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거리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보통 일대일의 관계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관계는 사랑의 관계일 것입니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저자는 조건을 기준으로 한 결혼은 본능에 이끌린 사랑과 같은 정열이 없을 것이며, 본능에 이끌려 성적인 매력만 따진 결혼은 평생 후회와 탄식만 줄 것이라 말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한쪽 극단만 선택했을 때에는 순간의 만족감은 있을 지언정 결국 결과에서는 불행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남녀 간의 사랑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형제와 자매 간의 사랑, 동성의 친구 관계에서의 우정 등도 결국 극단적이거나 일방적일 때 행복할 수 없습니다.

 

거리감에 관하여 저자는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추운 날씨에 고슴도치들은 서로 붙어 온기를 나누려 하지만 각자의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는데, 다시 또 추워서 들러붙었다가 또 다시 가시에 상처입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적당히 온기도 나누면서 서로의 가시에 상처입지 않는 균형감있는 거리를 찾게 됩니다. 이는 결코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관계의 경험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 라는 책에서 사랑에 관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의 관계는 서로 딱 붙어서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관계가 아닌, 두 영혼의 사이에 출렁이는 파도를 두고 함께 있으되 천국의 바람이 둘 사이에 춤추게 하면서 거리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관계에서도 각자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적당히 균형있는 거리감을 유지할 때 상승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5장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5장에서는 ‘오늘의 나’를 찾는 것 속에서 행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거의 고통이나 추억을 회상하거나 미래의 희망이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갑니다. 하지만 지금의 순간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늘의 모습, 바람의 향기, 기온의 감촉, 소리의 향연, 관계의 고마움 등은 잘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 살아있을 때는 정작 잘 찾아가지 않다가 죽은 뒤에는 추모하기 위해 찾아갑니다. 고마움의 표현은 상대방이 살아있을 때 해야 함을 잘 알지만, 사람들은 역설적이게 죽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절절하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순간의 가치,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는 속에서 행복이 있음을 말합니다. 마음의 충동성을 가라앉히고 오늘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자기 안을 바라볼 때, 작은 행복감이 쌓이고 결국 그러한 작은 행복감들이 모여서 큰 행복감이 되며, 굳이 과거와 미래를 향해 마음이 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과거가 정리되고 미래가 완성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경청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과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에 저자는 굳이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인생을 동기화시키려 하지 말고, ‘다름’을 추구하면서 자기 자신의 인생과 자기 자신 그대로를 긍정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흔이라는 나이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고 남들과 다름을 추구해도 괜찮을 수 있다는 자기 성찰이 가능한 시간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아마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이미 유지해 온 관계의 틀을 모두 벗어나 완전히 돌발적인 자기만의 길을 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관점이 변하고 관점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만큼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름’을 추구하는 핵심이고 행복을 향한 길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씌여졌지만, 쇼펜하우어의 이야기가 아닌 저자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는 아무런 고민없이 행복하게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모두 나름의 고민과 고뇌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입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느냐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 안에 있습니다. 굳이 마흔 이라는 나이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흔이라는 상징적 나이대를 이해함으로써 오늘의 자기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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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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