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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V49kYLyAnU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하지만 왕족이나 명문가, 또는 사회적으로 이미 세력을 형성한 기득권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아무리 돈과 권력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도 한 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는 게 역사적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경우 기득권의 흐름을 이어가게 되고 심지어 국가의 주체나 이념이 바뀌는 중에도 그러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기득권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구분을 하게 됩니다. 평등을 부르짖었던 공산주의도 정권이 안정된 뒤에는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기고 기득권과 비기득권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니체도 ‘권력에의 의지’를 인간 본성으로 규정하고, 사람은 둘만 모여도 자연스럽게 권력의 서열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미 기득권을 확보한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우월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는 그 사람이 내 위로 가게 둘 수는 없다는 심정이 깔려있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밑에 있는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자기 위로 올라가는 것 같으면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주인의 자식보다 똑똑한 노비의 자식이 신분의 역전을 노리는 과정에서 주인을 비롯한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중국의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삼국지의 인물 중에 종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요는 후한의 시대에도 벼슬을 했던 집안이고 삼국으로 나뉜 뒤에는 조조의 총애를 얻어 위나라의 상국에 임명되었고, 자신이 추천했던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 일로 잠시 물러나기는 했지만, 다시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에 의하여 정위라는 지금의 장관에 버금가는 직책으로 복직하고 그 다음에는 태위, 그리고 조비를 이어 다음 황제가 된 조예 때에는 태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나라 권력의 중추에서 활동했던 종요의 아들 중에 종회라는 뛰어난 막내 아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인생을 시작했는데, 본인 역량 또한 뛰어나서 이른 나이에 관직을 시작하고 빠르게 관내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아버지의 권세가 높은 영향도 있었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뛰어난 자질이 있었기에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런 종회는 박학다식하여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그 때문에 신분을 떠나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친분을 맺고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등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등애는 둔전에서 농사짓던 농민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종회와는 달리 흙수저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 말단 관리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신분의 위계가 컸던 그 당시에, 흙수저 출신의 등애는 말단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등애를 사마의에게 추천하여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한 사람이 바로 종회였습니다. 등애가 능력이 출중했다고는 해도 종회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첫 물꼬를 터주지 않았다면 적당히 하급 관리에 머물다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나 등애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고도 하기에 온전히 그의 능력을 인정받고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종회 덕분에 일단 흐름을 타자 등애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책을 잘 수행했습니다. 그의 강점은 농민 출신이고 흙수저 출신이었다는 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농지의 경작과 황무지 개간, 수로의 개척과 확장, 군량의 수확과 공급에 있어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이미 농사에 있어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 있었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비롯한 일반 서민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전혀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승승장구 하다가 결국은 종회와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촉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종회, 제갈서와 함께 장군에 임명되어 출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종회는 처음에 신분의 차별 없이 능력만을 보고 사람을 추천한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서히 자신과 동등한 위치를 향해 올라오는 등애를 보면서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위나라 군대는 촉을 정벌하기 위해 세 갈래로 나누어 진군을 하는데, 그래도 주력을 종회가 이끌었던 점을 보면, 이때까지는 그나마 종회가 우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력 부대를 이끌고도 종회는 검각에서 저지당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때 등애가 정예군 1만을 거느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부현(부성)을 공격하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부현을 공격하면 촉나라의 수도가 바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검각의 부대가 지원을 갈 수밖에 없고, 결국 검각의 방어가 풀려 종회의 주력군이 앞으로 진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등애는 목숨을 건 무모한 작전이었지만, 결국은 험한 산길과 절벽을 넘어 부현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부현의 촉나라 군대는 적이 절대 나타나지 못하리라 예상했던 곳에서 적이 나타나자 큰 저항없이 항복해 버립니다. 그리고 부현이 공격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검각의 촉나라 군대는 부성을 지원하기 위해 검각의 방어를 풀어버리고, 종회는 큰 어려움 없이 검각을 통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등애는 부현을 지나 바로 촉나라의 성도로 진군하고 그 당시 촉나라 왕인 유비의 아들 유선은 부현의 군대처럼 저항없이 바로 항복해 버립니다.

 

등애가 부현으로 향하는 길을 개척한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나뉘는 바가 있습니다. 전혀 사람이 다닌 적 없는 길을 개척해서 나아갔다는 말도 있고, 목동들만 다니는 샛길을 발견해서 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러한 조금은 다른 견해에도 불구하고, 등애의 출신 이력에 따른 그만의 경험에서 발휘되는 직관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높은 위치에서 교과서적인 인생을 살아온 종회로서는 절대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고 실행이었을 테니까요. 특히나 함께 출정한 세 명의 장군 중 한 명인 제갈서 마저도 등애와 함께 가기를 거부하고 종회에게 남았던 것을 보면, 등애의 작전이 무모할 정도로 목숨을 건 작전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주력군인 종회보다 먼저 촉나라를 장악한 등애는, 종회를 기다리지 않고 본인이 느끼기에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전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적의 수도를 점령했기에 빠른 안정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종회나 사마소 등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종회가 보기에는 월권행위였을 것이고, 촉나라 정벌의 모든 공을 등애에게 뺏기겠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종회를 비롯한 등애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세력들은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모함을 하게 되고, 등애는 붙잡혀 낙양으로 압송됩니다. 그런데 실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종회였고, 종회는 사마소에 의해 죽게 됩니다. 누명을 썼던 게 밝혀진 등애는 풀려나야 맞지만 종회와 함께 등애를 모함했던 사람들이 후환을 두려워하여 결국 등애를 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사마소 또한 등애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애는 어떤 식으로든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등애가 모함을 받은 것이라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추후 등애의 가족들까지 모조리 죽이거나 변방으로 쫓아낸 것을 보면, 애초에 사마소의 의도는 촉나라의 정벌 이후 종회와 등애 모두를 죽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종회 나름의 생각은, 사마소가 자신을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본인이 촉나라를 먼저 장악하여 촉나라의 지형적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등애가 먼저 성도에 입성하면서 모든 것을 장악하고, 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자 일단 등애 먼저 제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종회가 중심이 되어 등애를 모함하여 사마소에게 보고했는데, 사마소도 등애가 급부상하는 것을 꺼려했기에 그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모함을 빠르게 인정하고 잡아들이게 했을 것입니다. 등애는 순수하게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 뿐이었겠지만, 어쩌면 애초에 그는 기득권 세력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얼마나 견제하는지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촉나라 정벌의 일등 공신이 된 자신을 생각하면서 오만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흙수저 출신이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한 세대에 넘어서는 것은 무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흙수저는 아무리 분발하고 능력을 펼친다 한들 소모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흙수저 출신이었던 롬멜 장군도 비슷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리 잘 챙겨준다고 해도, 그들 마음의 본질에는 결코 흙수저와 동등한 위치에 서거나 그 흙수저가 자신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다는 것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은, 그들 나름에서 마음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그들끼리 티격태격 하는 것 같아도 신분이 역전되는 것에 대해서는 일심동체로 대응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가문의 세력을 등에 업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밑바닥부터 능력 하나로 성장하는 중이라면, 본인 능력의 예봉을 적당히 감추고 항시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견지하면서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이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본성 자체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위로 가고 싶고, 이미 위에 있는 사람은 그 위치를 지키고 싶어하며, 너무 앞서가려 하는 사람은 발목 잡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자면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위치의 사람들이 품은 마음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흙수저 출신이라도 자기보다 앞서 위에 오른 사람이라면, 자신의 입지가 완전히 우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결코 그 사람과 동등하려 하면 안 되고, 설령 그 사람보다 우위에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의 입지는 불안정한 것이며 언제든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고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앞뒤 따지지 않고 다 밟고 지나가겠다는 패기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저항도 클 것이고 성공한다고 해도 그 근간이 약하기 때문에 유지가 힘들 것입니다.

 

참고로 등애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신의 자손대에서 이루게 됩니다. 등애의 자손 중에 중국 권력의 최고봉에 이른 사람이 바로 등소평, 덩샤오핑이기 때문입니다. 덩샤오핑 가문은 중국 최고 명문가 중 하나인데, 이제는 그 가문도 예전의 종회를 비롯한 기득권 가문이 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위치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주변을 견제하고 제어하면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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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777l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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